<양평 물소리길 2코스> 터널이 있는 기찻길(신원역~ 아신역) 7.9km. 소요시간 3시간>
양평 물소리길 2코스는 '터널이 있는 기찻길'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코스다. 터널이 2개가 있기 때문이다. 옛 중앙선이 단선이었을 때 사용되었던 터널이 복선 철길을 만들면서 자전거길로 바뀌었는데, 물소리길을 조성하면서 그 길을 사람도 걷는 길로 만든 모양이다. 원복터널과 기곡터널이 있는데, 기곡터널은 특별히 조명 장치를 설치하여 아트 터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손녀 돌보미로 늘 시간이 없어서 당일 여행도 큰맘 먹어야 한다. 코로나19로 하던 원격수업이 종료되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5시간 정도 여유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양평 물소리길 2코스를 가기로 했다. 신원역 도착이 10시. 신원역에 주차를 하고 출발한다.
역을 나오면 경강로(6번 국도)를 건너야 한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데, 건너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횡단보도에는 보행자 신호등이 있는 게 특징이다. 버튼을 누르고 1분 30초 정도 지나면 파란 불이 들어와 길을 건널 수가 있다.
강변을 따라 난 길을 잠시 걷는다. 물에는 항상 새들이 있다. 너른 강이 흐르는 양평에서 새들을 만나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물소리길은 경기 옛길인 평해길과 자주 겹친다. 여기서도 두 가지 리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매달려 있다. 왼쪽으로 꺾어 굴다리를 지나 잘 포장된 도로를 계속 걸어간다. 남한강 자전거길과 겹치는 구간이라 자주 자전거가 오는 지 확인해 봐야 한다. 나무에 잎이 나서 색깔이 조금씩 달라졌다. 풀이 봄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듯 풀밭은 이미 녹색이다.
시원하게 하늘을 찌르는 메타세콰이어 길이 우리를 맞이한다. 메타세콰이어는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 1년에 1m씩 자란단다.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길을 가 본 적 있는데, 여름엔 녹색으로 가을에는 황금색으로 물든 나무 숲길이 정말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겨울에도 멋지다. 2년 전에도 와본 적 있는데, 왜 메타세콰이어 길이 생각이 안 날까? '보는 것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보이는 것만 기억했을 테지.
길가에 누군가 노랑 말채나무를 심어두었다. 천리포 수목원으로 갔을 때 본 예쁜 색의 나무를 본 적이 있는데, 겨울 정원을 밝게 장식한 빨간색 가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말채나무였다. 말채나무는 보통빨간색인데, 흰 말채나무, 노랑 말채나무도 있다. 겨울에 정원에 심으면 잎이 다 떨어진 삭막한 정원을 환하게 만들어 줄 것 같다.
질울 고래실 마을에 들어선다. '질'은 질그릇, '울'은 울타리를 뜻하며,'질울'은 산이 마을을 울타리처럼 휘감은 동네라는 뜻이란다. '고래실'은 바다의 고래가 아니라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아 기름진 논을 말한다니, 논농사 짓기에 아주 좋은 마을일 것 같다. 농촌 체험 마을이라 하더니 마차와, 움집도 보인다. 요즘은 코로나19 상황이라 어렵겠지만, 2022년도 어울림 공동체 프로그램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체험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이문리 고갯길을 넘어가면 국수리다. 산수유와 비슷한 노란 생강나무가 활짝 피었다.
길가에 벚나무가 많다. 4월 중순에 왔으면 환하게 핀 벚꽃과 같이 걸을 수 있었을 텐데. 국수역 주변뿐이 아니고 양평 물소리길 전체에 벚꽃길이 꽤 많이 있다. 봄이면 참 예쁜 길인데, 너무 일찍 온 것 같다.
국수역을 지나면 철길과 나란히 걷는다. 경의 중앙선이다. 전철은 지평역까지 운행된다. 입구를 예쁘게 장식한 타운하우스도 구경하고, 너른 개천 가도 거닐어본다. 물오리 3마리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원복터널 입구에 가니 전기 공사에서 나와서 터널의 조명을 손보고 있다. 덕분에 우리가 어둡지 않은 터널을 안심하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질울 고래실 마을에서 자전거길과 헤어졌는데, 원복터널에서 다시 자전거와 함께 간다. 팔당에서 출발한 남한강 자전거길은 물소리길과 나란히 가다가 양평을 지나, 멀리 충주호까지 간다.
우리가 보통 터널이라고 하면 어둡고, 답답해서 지나가기 힘든 그런 것을 말하는데, 하도 밝아서 재미난 동굴 같은 느낌만 받았다. 기차만 다니던 터널을 걷는 것은 아무나 허락되지 않은 비밀 공간에 특별 초대받은 느낌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터널같이 어둡고 답답한 시절이 있다. 한치 앞도 안 보이고, 끝날 것 같지 않는 상황이 온몸과 마음을 짓눌러 빠져나오려고 하는 시도조차 포기해버릴 정도로 힘들 때, 사실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을 알면 견디는데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터널은 꼭 끝이 있고, 터널이 끝나면 밝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누군가 그런 터널 안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잘 이겨내고 터널 밖 밝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기를 응원한다.
터널 밖으로 나오니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장소로 보아 아무도 심은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어느 날 씨가 떨어져서 싹이 나고, 한 해 두 해 컸을 테지. 어떤 나무인지 이름도 모르지만 그 나무가 오래오래 잘 자라서 그 자리에서 큰 나무로 우뚝 서기를 소망해본다.
기곡터널에 왔다. 원복 터널은 261km인데, 기곡 터널은 좀 더 길다. 약 500m가 된다고 한다.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섰는데, 컬러 조명이 켜져 있지 않다. 예전에 왔을 때는 여러 가지 색으로 계속 바뀌어가면서 멋지게 연출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조금 서운하다. 어쩌겠는가. 이대로 즐기는 수밖에.
터널 밖은 또 다른 마을. 양서면 복포리에서 왔는데, 옥천면이다.
옛 아신역이었던 자리란다. 아신갤러리에는 재미난 조형물들이 많다. 실제 기차를 이용한 전시관도 있다. 전시관은 열려있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관람은 하지 않았다. 전시관 입구가 선물상자 모양인 것이 이제야 눈에 보인다.
등나무 터널 옆 테이블에서 간단히 커피와 간식을 먹고 잠깐 휴식을 취한다. 등나무 꽃이 피면 정말 예쁘겠다.
양평 물소리길 1코스가 약간 변동이 있었다고 했는데, 2코스도 조정이 된 모양이다. 예전에는 질울 고래실 마을을 통과하여 저수지 옆으로 해서 산을 넘어간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동네 오른쪽으로 길이 변경되었다. 거리가 더 짧아진 셈이다. 2020년 기록이 10.4km, 3시간 10분이었는데, 이번 2022년 기록은 8.6km, 2시간 34분이다. 공식 자료에는 7.9 km인데, 실제 걸은 거리와 좀 차이가 난다.
아무래도 날씨나, 봄 풍경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트레킹이었다. 좀 더 봄이 무르익은 후, 또는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멋지게 단풍이 드는 가을에 한번 더 걷고 싶다. 매주 길을 찾아 걷다 보면 날씨와, 꽃 개화 시기 등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걷는 일에 무게를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