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산과 들과 마을에 온갖 꽃이 피고, 나무에도 새싹이 돋는 때 어디든 걷기 좋지 않은 곳이 있을까? 특히 연두빛 수양버드나무와 연분홍 벚꽃이 흐드러지는 물소리길 전 코스는 참 걷기 좋은 곳이다. 물과 만나는 3, 4코스는 우리가 특히 애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토요일 김제 모악산 마실길을 갔다 와서, 양평에서 자고 일요일 아침 일찍 아신역으로 향했다.
물소리길 2코스를 다녀온 것이 3월 30일이었으니까 11일 만이다. 그 사이 봄이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양평 물소리길 3코스는 강변이야기길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아신역에서 출발하여 양평역까지 총 거리 10.7km, 소요 시간 3시간.아신리를 거쳐 옥천면,들꽃수목원,천주교 양근 성지,양강섬을 지나는 길이다.남한강을 끼고 걷는 길이 길어서 한참을 시원한 강변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다른 코스보다 상당히 다양한 얘깃거리가 있는 길이기도 하다.
물소리길 2코스인 아신갤러리 아래 쓸만한 주차장이 있어서 그곳에 주차를 했다. 자전거 쉼터가 있어서 화장실도 있고 테이블과 벤치도 있어서 애용하는 곳이다.
전철을 이용하려면 아신역에서 내려서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아신역에도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 요금은 30분에 500원, 일일 주차는 5,000원이다.
아신 갤러리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아신 2리로 들어가는 굴다리가 두 개다. 경의중앙선 철도가 지나가는 굴다리를 지나면 또 하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로 통과하게 된다.
보통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 마을 길이다. 아신 2리 마을회관 앞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시골은 한참 농사 준비로 바쁜 철이다.'땅의 힘을 받고 자란 꽃들을 부러워하다' 이란 표현을 한 지인이 있었는데, 햇빛과 땅의 힘과 농부의 노력이 합쳐져 올해도 풍년의 결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원주택이 많은 곳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더구나 집 지을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남다른 관심일 수밖에 없다.
빨간 공중전화박스가 있어서 봤더니 집주인의 센스가 돋보이는 우편물 택배용이었다. 길목이 덕분에 환해지는 느낌이다. 집 안에는 벚꽃이 여러 그루 있었는데 모두 활짝 피어있다. 우리는 어떻게 꾸미고 살까 또 머리 속으로 궁리를 한다.
아신 1리로 넘어가는 길이 깨끗하게 아스콘 포장이 되어 있다. 아스콘 냄새가 아직 나는 걸 보니 한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오르막 산길이 나타난다. 걷기에 어려운 코스가 없다고 스틱을 두고 왔는데 살짝 후회가 된다. 마을 길 다음에 숲 속 길이 연결되는 것이 물소리길의 특징이다. 숲길의 좋은 기운을 들이마신다. 온몸이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여기저기 진달래가 눈에 띈다. 숲 속의 진달래 색깔이 옅은 건 아무래도 키 큰 나무들 때문에 받는 햇빛의 양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부족한 햇빛에도 고운 빛깔을 만들어 내는 진달래가 참 대견하다.
아신 1리로 넘어가면서 먼저 눈에 띈 것은 한국의 마테호른 백운봉의 모습이다. 가운데 뾰족한 모양이 마테호른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데, 높이가 940m인 백운봉은 용문산의 남쪽 능선으로 연결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한다. 예전에 등산한 적이 있는데 제법 험했던 기억이 난다.
길이 약간 변경되어 편안한 마을길로 곧장 내려간다. 원래 지나던 산길은 위험하다고 우회로로 가라는 안내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마을길 가에 산수유 꽃이 시들어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 뒤로 봄 빛깔의 대표인 연두빛이 온 마을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봄이 온 게 틀림없다.
조경이 멋있는 전원주택단지를 지나서 굴다리를 또 하나 지난다. 수도권 제2순환 고속도로 화도 - 양평 구간. 2023년 12월 개통 예정인 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계속 걷는다.
길이 있다는 것은 마을이 있다는 뜻이다. 길을 걷는 것은 그 마을을 가기 위한 것이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어디건 사람들은 살기 위해 마을을 만들고, 길을 만든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걷는 중이다.
아신 1리 마을회관에서 검정 화살표 방향으로. 화살표가 있는 이정표 덕분에 길 찾기가 수월했다. 보리밭으로 보이는 초록 밭과 연두색 나무를 만난다. 봄이 온 것이 확실하다.
걸어 나오니 옥천 레포츠 공원이 보인다. 벚꽃이 멋지게 피었다. 옆으로 흐르는 사탄천에서 7월이면 물 축제를 하였는데, 2019년까지는 축제를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는지 모르겠다.
물이 가까운 양평에서 늘 흔하게 볼 수 있는 물새들이 일광욕을 하는 듯 깃털을 고르고 있다. 봄 햇살이 따스하다.
옥천교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조금 더 걸어가면 자전거길과 만난다. 양평을 거쳐 충주까지 가는 남한강 자전거길이다. 하얀 민들레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야생화를 여기서 많이만났다. 햇빛이 잘 비춰서 야생화가 잘 자라는 것 같았다.
종지나물
봄까치꽃
봄맞이꽃
오빈 육교 앞에서 일단 남한강 자전거길과 헤어진다. 왼쪽이 자전거길이고, 물소리길 3코스는 육교를 건너 남한강 쪽으로 간다.
남한강을 만나면 왜 가슴이 설레는지 모르겠다. 가정천이나 사탄천같이 작은 개천들이 모여서 모여서 큰 강을 이루는 곳. 다시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수도인 서울을 거쳐 인천 - 서해 바다로 향하며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바로 그 남한강이다. 호수나 바다를 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강을 만나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남한강 자전거길은 아니지만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심심치 않게 자전거를 만난다. 발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내가 찾던 여행의 전부. 경기 옛길인 평해길과 만났다 헤어졌다 하더니 여기서도 만나서 나란히 간다. 물끝길(양근나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들꽃수목원이 왼쪽에 보인다. 오른쪽은 남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왼쪽은 들꽃수목원의 아기자기한 조경이 함께 한다. 건너편 병산리에도 벚꽃이 환하게 피었다.
개나리, 벚꽃도 함께 흐드러지게 피었다. 봄의 한가운데서 봄의 기운을 듬뿍 받는다.
새가 날아오르기 전 물 위를 튀는 모습을 카메라에 잡았다. 물수제비 뜨는 것 같은 흔적이 재미있다. 새의 비상이다.
양근 성지 가까이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자인 이승훈 베드로가 양근 성지로 와서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초기 한국 천주교 지도자인 권일신, 권철신 형제를 비롯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생겼다. 그들을 기념하는 천주교의 성지다. 따로 '순교 길'이라는 안내 팻말이 있었는데, 양평의 성지 순례길을 걷기 위해 방문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은 모양이다.
일찍 핀 벚나무는 벌써 꽃비가 내린다. 하얀 나무 네 그루는 목련이다. 작은 언덕인 물안개 공원에는 개나리가 한창이다. 봄꽃이란 꽃은 모두 다 핀 듯하다.
물안개공원
양강섬 부교는 2020년 7월에 완공이라고 되어있다. 우리가 처음 3코스를 걸었을 때가 2020년 2월이었는데, 그때 공사 중이었다.아주 멋진 모습이다. 양평의 명물이 될 것 같다.
양강섬 부교
무엇이든 늘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 아들을 가진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이번에도 아들이 반대로 할 것으로 생각하고 강가 모래에 무덤을 만들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청개구리 아들은 마지막으로 효도를 한다는 생각에 정말로 강가 모래에 무덤을 만들어 드린다. 그 후 비만 내리면 무덤이 쓸려 떠내려갈까 봐 구슬피 개굴개굴 운다는 청개구리 이야기의 유래가 바로 이 작은 산(떠드렁산)이란다. 이괄의 난으로 유명한 그 이괄과 아버지의 이야기라는데, 어쨌든 이괄이 어렸을 때 말을 지독하게 안 듣던 개구쟁이였던 모양이다.
양강섬은 역사적으로 광해군 일지에 그 이름이 등장한다. 양강섬을 양근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양근이란 지명은 버드나무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남한강 변에는 옛날부터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하는데, 폭우와 홍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단다. 버드나무는 일단 뿌리를 내리면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폭우로 인한 제방의 붕괴를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옛 조상의 슬기를 여기서도 엿볼 수가 있다.
넓은 잔디 마당은 마을 주민들의 쉼터가 된다. 내가 아이라면 마구 뛰어다니고 싶은 충동이 인다. 곧 삼삼오오 모여들어 빈 잔디 마당을 활기로 채우리라.
이곳에서 잠시 쉰다.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간단한 간식과 차 한 잔. 걷기 여행에서 쉼은 필수다.
여기도 벚나무가 많다. 양평에는 정말 벚나무가 많다. 키만 한 조팝나무도 많이 있다. 벚꽃의 향연이 끝나면 조팝나무들이 눈이 내린 듯한 멋진 풍경을 선사할 테지.
빈 의자를 만난다. 앉아서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멍 때리기 좋은 곳이다.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시간이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아무 계획 없이... 아무 욕심 없이...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항상 기분이 좋다. 그 아이들의 깨끗함과 순수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아빠 엄마가 곁에서 지켜주는데...
'영원으로 가는 사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이다. 천주교 양평지역 순교자들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양강섬을 나오면 남한강 자전거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양평역까지 복잡한 시가지를 통과할 줄 알았더니, 예쁜 개천 길이 연결되어 있다.
양평역까지 걸어서 전철을 타고 아신역으로 가면 우리의 일정도 끝이 난다.
아침에 아신 갤러리에서 내려오는 계단 아래에서 스마트폰 운동 앱을 켜서거리가 약간 줄긴 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양평군 공식 거리보다 짧은 이유가 중간에 길이 변경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공식 거리가 10.7km였는데, 우리가 걸은 거리는 9.5km, 3시간 10분 정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