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따스한 봄 양평 물소리길 버드나루께길을 들어선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남편은 지금도 이 이야기를 하면 웃는다. 무엇일까. 한눈에 반한 걸까.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나는 고속도로에서건 국도에서건 양평을 지날 때마다 ‘양평이다!’ 하고 소리를 질렀고, 해마다 봄이 되면 양평을 가자고 졸랐다. (중략)
이 글은 양평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계간 문예지에 실린 '버드나루께길'이라는 글의 일부이다.
여행하다가 주저앉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여행하다 만난 양평에 살기를 원했고, 양평에 살기 위해서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한눈에 반한 길 - 물소리길4코스 버드나루께길은 우리 부부에게 그만큼 중요한 곳이다.
일요일 물소리길 3코스를 걷고, 다음날 물소리길 4코스를 걷기로 하였다. 벚꽃 개화 정도로 보아 아무래도 일주일 후면 피크가 지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벚꽃은 한꺼번에 와르르 피었다가 우수수 꽃비로 떨어져 버려, 제대로 벚꽃을 즐기려면 서둘러야 한다. 양평에도 벚꽃이 참 많은데, 특히 갈산공원의 벚꽃길은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벚꽃 명소다.
물소리길 4코스는 양평역에서 출발하여 원덕역까지 총 10.4km, 소요시간 3시간. 버드나루께길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코스다. 양평역 - 양평 군청 - 갈산공원 -현덕교 - 신내 해장국거리- 소노문 양평-원덕초등학교 - 원덕역으로 진행하게 된다. 우리는 차를 원덕역에 두고 전철을 타고 양평역으로 가서 4코스를 걸어 원덕역으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원덕역 주차장은 무료이지만 이미 만차다. 도로 가에도 주차선이 그려져 있어서 그곳에 주차를 하고 전철을 탔다.
양평역까지는 5분 정도 소요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서울을 출발했는데, 늘 그렇듯 출근 시간 정체 때문에 생각보다 늦어져서 양평역을 출발할 때의 시각이 11시였다. 양평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직진하면 양평 군청이 나오는데, 그곳을 지나 강변도로 길로 계속 걸어가다가 계단으로 내려가면 3코스에서 연속되는 자전거와 겸용으로 사용하는 걷기길을 만나게 된다.
푸른 하늘과, 파란 강물, 강 건너편 풍경을 즐기면서 길을 걷는다.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는 탁 트인 풍경이다. 대신 챙이 넓은 모자가 필요한 길이다. 아직 따가운 햇볕이 아니라 다행이다.
갈산 공원 입구에서 남한강자전거길과 다시 만난다. 밤에는 반짝이는 조명시설을 해 놓아 색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별자리 돛단배'라는 이름이 붙은 설치물이 있었는데 밤에 어떤 모습으로 빛이 날지 궁금해진다.
평소 다닐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천주교 관련 표지가 강가에 있다. 양근 지구에서 천주교 순교자가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와 관련된 장소인지 모르겠다.
갈산 공원 쉼터에 작은 전시회가 열렸다. 어르신 한 분이 새 그림을 세밀화로 그려서 전시를 해 놓았다. 함께 있던 친구분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를 보고 사진 찍어가라고 권한다. 관심을 가지고 셔터를 눌러대는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 화가 어르신. 지금처럼 건강하셔서 좋은 그림 계속 그려서 전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격적으로 벚꽃길을 걷기 시작한다. 갈산 공원의 특징은 벚꽃길 아래 고수부지의 연두빛 버드나무의 행렬이다. 바로 나를 한눈에 반하게 했던 연분홍 벚꽃과 연두빛 버드나무의 어울림을 또다시 만났다. 나물 캐는 아주머니들,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부부, 작은 정자나 벤치에 앉아 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두빛 버드나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인다. 그림 같다.
일요일은 갈산 공원 주변 도로가 너무 복잡하여 벚꽃이 어느 정도 피었나 확인하려고 진입로로 들어가 보려 하다가 결국은 차를 돌리고 말았다. 9일과 10일에 '제5회 갈산 누리봄 BGM' 행사가 있었다고 하더니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몰렸나 보다. 음악이 흐르는 벚꽃길을 같이 걷는 행사라고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다가 다시 개최된 모양이다.
평일인데도 적지 않은 인파가 벚꽃길을 걷고 있다. 가족, 친구, 자전거 행렬도 보인다. 모두 환하게 만개한 벚꽃을 닮은 표정이다. 우리 표정도 그럴 것 같다.
어떤 나무는 초록 잎사귀가 벌써 보인다. 산들바람에 꽃비가 흩날리기 시작한 나무도 있었다. 물소리길 4코스는 다른 벚꽃길과는 달리 버드나무의 연두색과 멋지게 매치되는 매력이 있다. 거기다가 남한강 물빛, 하늘빛까지 이번에는 아주 제대로 날을 잡은 느낌이다.
주민 체육 시설이 있는 곳을 지나가면 인파가 급격히 줄어든다. 대부분 그곳에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원덕역까지 걸어가려면 제법 준비가 필요하다. 덕분에 우리는 사람이 덜 붐비는 곳에서 좀 더 쾌적하게 벚꽃길을 즐긴다.
벚꽃길 한 켠에 작은 갤러리가 있다. 너무 작아서 한 뼘 갤러리라고 이름 붙였다. 정성껏 그린 작품들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현덕교가 가까워진다. 다리를 건너면 개군면이다. 여기서 남한강 자전거길과 헤어지게 된다. 충주까지 가는 자전거길도 한참을 벚꽃과 함께 간다. 작년에 물소리길 4코스를 걸었을 때 쉬고 있던 라이더 한 사람이 그쪽 길도 벚꽃이 정말 좋다고 한번 가 보라고 권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없으니 내년에나 걸어봐야겠다.
흑천을 따라 벚꽃길이 계속된다. 쉴 만한 데가 따로 없어서 길옆 벚나무 아래 돗자리 펴고 간단한 간식과 차 한잔의 휴식을 가졌다. 간혹 지나는 자전거 외에는 다니는 사람은 우리뿐이다.참, 강아지와 산책 나온 가족이 있어서 유일한 벤치를 지나쳤다. 그들도 거기서 한참을 좋은 시간을 가졌으리라.
꽤 오래된 벚나무도 보고, 흑천도 카메라에 담아 본다. 평해길 코스 이름이 거무내길인데, 물속의 돌이 검어서 물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거무내, 즉 흑천이라고 했다고 한다.
신내 해장국 거리를 지나서 쉐르빌 온천 호텔과 소노 휴 리조트를지나간다. 개나리는 그 노란빛이 주변을 환하게 만들 정도로 활짝 피었다. 이 길에도 벚나무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아직은 큰 나무가 아니지만 세월이 지나면 더 멋진 풍경으로 이 길을 빛내게 되겠지. 멀리 백운봉이 보인다. 길가이지만 벤치가 있어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걷는다. 공세리 마을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드디어 원덕초등학교가 보인다.
다리 위에서 추읍산을 조망하였다.
드디어 원덕역 도착. 아침에 출발한 장소로 다시 왔다. 총 운동 거리 10.4km, 걸린 시간은 휴식 포함해서 3시간 10분 걸렸다. 걷기 편한 평길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덜 걸린 것 같다.
이번 토요일쯤이면 꽃비가 내릴 것 같다. 봄에 걷기 좋은 길 양평 물소리길 4코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감상하며, 시원한 강과 함께하는 연두빛 버드나루께길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