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산 억새 산행

by 세온

가을 산행 두 번째. 연속 억새 산행이다. 아직 단풍이 자리하기 전 가을을 흠씬 느끼게 하는 억새 산행지로 민둥산, 신불산, 명성산, 화왕산, 천관산, 오서산 등을 꼽는다. 다 가본 산이긴 하지만 민둥산과 신불산을 제일 많이 간 편이다.

신불산, 간월재는 수도권 지역에서 먼 편이라 마음먹기가 쉽지 않지만, 특별한 매력이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게 만든다.

신불산 부근에는 신불산을 포함하여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재약산, 영축산, 간월산 등 천고지가 넘는 산이 7개나 있는데, 밀양, 청도, 울주 등의 지역에 걸쳐져 있는 이 산군을 통틀어 영남알프스라고 칭한다.

13년 전 사진 기록을 찾아봤다. 그 해에는 신불산자연휴양림을 들머리로 해서 간월재를 거쳐 신불산, 영축산 코스를 제대로 갔다. 50대 때의 일이니 그때만 해도 젊었다.

(2010년 9월 24일)

다시 가기는 어렵겠지만, 사진을 열어보면 그때 그 감동이 다시 그대로 살아나는 듯하다.

내년에는 또 갈 수 있는 산이 더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번 가을, 겨울 산행의 숨은 주제는 '다시 못 가게 될지도 몰라서 꼭 한 번은 더 가 보고 싶은 산'이 될 것 같다.

앞으로 못 가게 될까 봐 이번 신불산 산행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코스를 골랐다. 가장 짧은 거리에 편한(?) 코스이기도 한, 배내고개 - 배내봉 - 간월산 - 간월재 - 임도 - 웰컴복합센터(9.5 km)를 걷기로 했다. 험한 길과 편한 길이 섞여있는 코스인데, 내려올 때 길이 좀 험해서 막판에 조금 힘들었다.

특이점은 자차 이용이 아니라, KTX를 타고 간 것이다.

새벽 5시 반쯤 집을 나섰다. 식사용으로 각자 샌드위치 두 개를 준비했다.

양평역 앞 공영주차장(주차비 종일 5,000원)에 차를 세우고 양평역으로 향했다.

강릉에서 오는 KTX를 6시 36분에 타서 서울역에 내려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를 하고, 울산 가는 KTX로 환승했다.

울산에는 10시 25분에 도착했다.

울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배내고개까지 갔다. 택시비는 18,500원이 나왔다.

배내고개에서 배내봉까지는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다. 초입에도 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어서 그리 힘들지 않게 올라갔다.

하늘은 푸르른 가을 하늘이나, 숲은 아직 여름 끝자락이다. 하지만 숲의 색감은 한창때의 진초록에서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용담

배내고개 - 배내봉 - 간월산 코스의 특징이 능선을 걷기 때문에, 양쪽으로 전망이 탁 트여서 시원한 느낌을 주어 산행이 더욱 즐겁다. 억새가 계속 함께 한다.

멀리 영남알프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이 보인다.

쑥부쟁이

산꿩의다리가 아직도 피어있다.

산꿩의 다리

깨끗한 흰색 구절초에 자꾸 빠져든다. 집에 구절초 많이 심어야겠다.

구절초

민들레도 쇠서나물도 아닌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이 만든 종이꽃 같은 이 꽃은 조밥나물일까?

배초향은 색이 더 연하고, 이삭 모양으로 꽃이 양쪽으로 고르게 피는데, 꽃향유는 강한 자주색 또는 보라색으로 피며 줄기와 가지 끝에 빽빽하게 한쪽으로 치우쳐서 이삭으로 달린다고 한다.

꽃향유

아래에 보이는 나즈막한 산보다 더 높은 곳에 우리가 서 있다. 내려가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참 잘난 사람들 같다. 우쭐거려진다. 다름 아닌 성취감은 정신 건강상 우리를 더 젊게 만드는 엔돌핀이 되는 듯싶다.

하늘에 걸린 사다리라는 이름을 지을 줄 아는 우리 조상들은 다분히 문학적 소질을 가진 듯하다. 달오름길, 선짐이질등은 또 어떤가.

옛 선인들이 화살을 쏘아 천 개의 달 중에서 한 개의 달을 맞춰 그것을 물그릇에 담아 마셨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시를 느끼게 한다.

등짐을 진 채로 서서 쉬었을 법한 바위가 가까이 있다. 선짐이질등 바위일지도 모르겠다.

신불산을 여러 번 왔지만, 간월산은 처음이다. 산객은 많은데, 똑바로 발을 딛고 서 있을 데가 마땅치 않을 정도로 바위가 뾰족하고 경사가 급하다. 처음 온 곳이라 정상에서 인증 사진을 찍으려다가 카메라를 주고받는 순간, 균형을 잃어 넘어질 뻔하였다.

그 광경을 보았는지 우리가 가는데 어떤 여자 산행객이 손을 내밀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도와주려고 한단다. 우리가 나이 들어 보였나 보다.

"스틱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이런 곳에서 남의 손 도움을 받을 정도면 산행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인네 혼자 걷기 힘들어 보일 정도로 정상 부근이 험해 보였다.

신불산 임도가 뚜렷이 보인다.

신불산

울산 시가지가 잘 보인다.

일찍 단풍 드는 나무가 있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지만, 강렬한 빨강색 점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간월재, 억새 언덕으로 들어선다.

간월재

억새는 처음에는 은빛이 강하나, 차츰 연한 갈색을 띠게 된다. 그런 채로 9월부터 11월, 12월까지도 눈이 하얗게 내리기 전까지는 한결같이 우리를 맞이해 주는 다정한 풍경이 되어준다.

하늘하늘 한들한들 바람에 가녀린 몸을 맡기면서 허연 머리로 괜찮다, 다 괜찮다 끄덕끄덕 우리를 위로하는 느낌이 든다. 그 너른 품에 폭 안겨서 세상 사 힘든 일쯤은 깨끗이 털어버릴 것 같다.

"이제 오니? 그래 우리는 잘 지내. 그동안 힘들었지? 우리는 여기 이렇게 포근한 쉼터를 만들어두고 너희를 기다리고 있으마. 언제든지 와. 우리는 여기 항상 있을 테니까."

규화목이라고, 지질 현상으로 땅에 묻힌 나무가 압력을 받아 그대로 돌이 된 것이라고 한다. 살던 아파트에 규화목을 흉내 낸 조경물이 많이 있었는데, 실제 규화목은 처음 보았다.

간월재가 눈 아래 보인다. 간월재는 신불산 올 때마다 어떤 코스를 선택하던지 꼭 들러서 가던 곳이라 반갑다.

예로부터 간월재는 사람이 많이 왕래한 곳이라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주민들이 10월이면 간월재까지 올라와 억새를 베어다가 억새지붕을 이었다고 한다.

신불산, 영축산. 다 가 본 곳이지만, 이제는 못 갈 것 같다. 대부분 산객들이 신불재에서 신불산 사이 등산로의 억새가 장관이라고 말한다. 그때 걸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억새들이 바람의 지휘에 맞춰 교향곡을 연주하듯 흔들리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억새 군락지에서 바람과 억새의 음악연주회를 잘 감상하고 왔다고 했더니, 정말로 음악연주회가 있었던 줄 착각하신 분을 설득하느라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억새 축제날에 맞춰 가수들의 공연도 하고, 산악 영화제도 열린다니까, 진짜 음악연주회도 열릴지 모르겠다.

간월재 휴게소

발가락에 신호가 와서 더 걷지 않고 앉아 있었더니, 남편이 사진을 많이 안 찍고 그냥 내려가자고 한다. 발을 위해 임도로 내려가기로 했다.

높은 곳의 하늘은 언제나 힐링이다. 구름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볼 때마다 마음이 환해진다. 왜, 아래에서 보는 하늘과 다른 느낌일까? 더 넓게, 더 가까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지나가는 산객을 위해 어느 산이나 약수터가 있다.

천남성

가을의 시작을 알리기에 충분한 단풍이다.

험한 등산로는 폐쇄했다.

이 길 이름이 간월산 꼬부랑길이라고 한다.

임도로 쭉 걸어가기는 너무 도는 것 같아서, 간월산장 700m에서 산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길이 좀 험하다 했더니, 간월산 공룡능선 가는 등산로라고 이름 붙은 산길이었다.

그런데 임도로 계속 갔으면 엉뚱한 길로 빠져서 고생할 뻔했다. 그대로 갔으면 목적지가 아닌 훨씬 먼 곳에 도착해서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현명한 판단 덕분에 무사히 제시간에 산행을 끝낼 수 있었다.

개울을 건너면 날머리인 복합웰컴센터다.

복합웰컴센터에서 울산역까지 택시비는 9,000원이 나왔다.

저녁은 울산역에서 해결하고, 6시 23분 출발, 서울역 도착이 8시 50분, 다시 KTX를 타고 양평역에 10시 17분 도착.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가까웠다.

새벽 5시 반, 집에서 출발하여 밤 11시 도착했으니, 꼬박 17시간이 걸린 셈이다.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추억 한 자락 쌓았다.

영화 한 편을 찍 듯. 깜깜한 새벽 집을 나설 때의 느낌, 양평역, 서울역의 아침 느낌, 계단에 앉아 샌드위치와 따뜻한 라떼를 마신 기억, 기차에 나란히 앉아 편하게 한 여행, 울산역 아침, 택시 타기, 배내봉과 간월산을 넘어 간월재까지. 등등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내 기억 창고 속에 순차적으로 잘 정리되어 들어가는 중이다. 언제 또 둘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추억을 맛깔나게 씹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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