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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Dec 24. 2023

 그 겨울 첫 크리스마스 기억

겨울이면 생각나는 할머니의 고향. 크리스마스

 할머니의 고향을 방문했다. 여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추운 겨울이었고, 마을에 들어서자 흰 눈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외갓집도 하동 소재 시골이지만, 소도시에서 생활 전선에서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느라 친정 들이 한 번 맘먹고 하기 힘들었던 엄마의 삶 속에 나를 데리고 외갓집 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외갓집 방문은 중학생때 한 번 간 적이 있는 정도다.

 다들 그때는 그렇게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네 자식 중에 가운데 낀 둘째 딸까지 그 순서가 되지 않았으리라 싶다.

 오빠랑은 두 살 차이, 남동생과는 4살 차이. 그래도 귀염 받을 기간이 있었을 텐데. 엄마와 나는 가족 중에서 가장 거리가 있는 사이였던 기억만 있다. 너무 어려서 기억을 못 하는 사랑받았던 시절은 아가신 부모님 대신 장녀인 언니한테 물어보아야 할까. 세 살 때 딱 한 번 외갓집에 엄마랑 같이 간 적이 있다는데, 너무 어려 기억이 안 나는 게 서운하다.

 수순으로 나의 보육은 할머니 차지가 되었고, 집을 나설 때는 껌딱지처럼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다닌 기억은 꽤 남아있다.

 할아버지는 뵌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 혼란의 시대에 일본으로 유학 간 할아버지가  일본 여인과 결혼을 했고, 할머니는 속아서 시집온 중혼의 피해자였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분 집에 꽤 많이 놀러 갔다. 여름이면 늘상 더위를 피해 모여드는 촉석루에도 할머니와 나의 지정석이 있었다.

 할머니의 친정은 합천군 삼가면이었다.

 면소재지일 듯한 곳에서 버스를 갈아탄 기억이 난다.

 진주는 눈이 별로 안 오는데, 할머니의 고향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할머니의 친정을 진외갓집이라고 했다. 진외갓집에 들어서니 한창 제기를 닦느라고 바빴다. 많은 유기와 짚 수세미, 진회색 재가 널려있는 광경이 생각난다. 이모할머니들로 보이는 분들의 환한 웃음도 보기 좋았다.

 따끈따끈하게 군불을 땐 구들방이 있었고, 흰 눈이 덮여 멋진 아름드리 소나무도 기억이 난다.

  다음날 밤, 동네 조그만 예배당으로 초대되었다. 시끌벅적 요란한 분위기에 마냥 신기했다. 그전에는 교회를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처음 보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이들도 많았지만 맛있는 과자와 사탕! 어린아이에게 공짜로 주는 먹는 선물만큼 더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지금 생각하니 크리스마스 전날 할머니와 내가 진외갓집을 방문했던 것 같다.

 그 후 교회도 가본 적 있고, 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도 해마다 마련하곤 했지만,

 내게 크리스마스는 그 겨울밤, 온 세상이 까만데 눈이 시렵도록 흰 눈이 소복이 쌓이고, 상대적으로 밝고 요란하고 맛있는 과자와 사탕을 공짜로 주는 인심 좋은 시골 예배당의 추억이 첫 번째 기억이다.

 살아생전 딱 두 번 보고는 끝내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속아린 마음도 나중에야 이해하게 된 철없는 손녀였지만. 할머니는 내게 첫 크리스마스를 선물하신 가장 가까웠던 어른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할머니의 고향 삼가면 진외갓집 동네와 그 예배당이 늘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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