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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Feb 04. 2024

양평사람은 기다려준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양평 장날이라 <갈산 공원길>을 걷기로 했다. 갈산공원길! 오늘 처음 그 이름을 보았다. 물소리길 4코스가 변경되어 이제는 아름다운 버드나루께길의 이름이 갈산공원길로 바뀌는 모양이다. 새로 바뀐 물소리길 4코스는 며칠 전에 걷기는 했지만, 벚꽃 피는 봄에 다시 걸은 다음 려고 사진을 찍지 않았다.

  집에서 갈산공원길로 빠른 걸음으로 30분쯤 걸어가면 읍내 중심가에 도착한다. 되돌아가는 길에 두어 번 택시를 이용했다. 버스가 자주 없어서 이용을 해 본 적이 없다. 하루에 3번 정도 운행된다고 한다. 셔틀버스도 아파트 중심으로 운영이 되고, 인구수가 적은 주택지는 자차가 없으면 생활하기가 불편하다.

 지난번에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걸어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읍내에 나온 이유는 아직도 미용실이 불편한 남편의 이발소 방문을 위해서였다.

 인터넷으로 이발소를 검색하고 위치를 파악한 다음 바로 찾아갔다. 장날이라 손님이 많을 줄 알았더니 없어서 바로 이발을 할 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면도까지 시원하게 했다고 좋아하는 남편은 앞으로 이 이발소를 단골로 삼을 것 같다.

 양평장에서 메밀 전병과 만두를 사고 갈산공원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양평 읍내는 구시가지라 도로가 혼잡한 편이다. 퇴근길은 물론 특히 장날이면 차를 가지고 나올 엄두를 내기 힘들 정도로 정체도 심하다. 토, 일요일이나 장날에는 아예 차를 타고 읍내를 지나는 나들이를 하지 않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오늘은 토요일 장날인데도 겨울이라 그런지 그렇게 차가 많지는 않은 편이었던 것 같다.

 신호등이 많이 없는 편이다. 요즘 대부분 시골 도로를 다니다 보면 네거리에 회전교차로를 설치한 곳이 많다. 양평도 회전교차로가 많다. 신호등 불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서 차를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회전교차로에 들어간 순서대로 자신의 진로를 찾아 나가면 되는 것이니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차량이 많을 때는 그것도 쉽지가 않다. 서로 양보해서 물 흐르듯 잘 진행하는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구시가지의 불편한 점이 또 하나 있는데, 주차장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도로 가에 유료 주차를 할 수 있는 주차 라인이 있지만, 그곳도 자리를 찾기 힘들어 우리는 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거의 걸어서 병원을 가거나 장을 보기도 한다.

 걸어서 도로를 건너려면 횡단보도가 필요한데, 여기도 신호등이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눈치껏 알아서 건너라는 뜻이다. 물론 차가 많이 없는 곳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복잡한 중심가 횡단보도에도 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으니.

 서울에서 살 때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거의 없었다. 기다렸다가 녹색 신호를 받고 건너는 습관에 길들여 있던 나는 양평에 와서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었다.

 하지만 지내다 보니까 횡단보도에 건너려는 사람만 보이면 차가 서행을 하다가 멈추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차가 다 그런 건 아니었다. 멈추지 않고 휙 지나가 버리는 차도 더러 있었다.

 양평 사람들은 대부분 멈추었다. 그럼 그냥 지나가는 차는? 아무래도 서울 사람들이거나 타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런데 걸어 다니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건너는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 여기서는 얼마나 생활화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자차로 이동할 때는 멈춘다.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발견하는 즉시.

 양평 사람들은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건널 때까지 기다려준다. 우리도 이제 양평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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