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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Feb 05. 2024

입춘날 봄비를 기다림

어제가 입춘이다. 때맞춰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하지만 비는 감질나게 지나가는 비처럼 뿌리다 만다. 

 2월의 비는 봄을 맞이하는 비다. 입춘이라고 해서 바로 봄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봄비가 내린다고 해서 바로 새싹이 여기저기 마구 돋아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봄비를 기다린다. 다시 말하면 봄을 간절히 기다린다. 

 겨울이 참 길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이 되니까 화단 가득하던 꽃들이 시들어 버리고, 나무에 풍성하게 달려있는 잎들도 낙엽이 되어 떨어져 버렸다. 첫꽃밭이라고 온갖 정성을 들여 나의 노동력을 쏟아부어 만들었던 아름다운 꽃 동산을, 이번에는 월동 준비하느라고 보온덮개천과 녹화마대로 뒤집어씌우고 칭칭 감아버렸다.

 그 결과 화려하던 화단은 부상당한 패잔병 꼴이 되어 시야를 어지럽힌다. 눈이라도 하얗게 내려 그 덕지덕지한 화단을 덮어주기를 바랬지만 양평은 강원도 만큼 눈이 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보온덮개천을 살며시 벗겨보면 그 속에 초록초록한 새싹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수선화 몇 포기도 작은 순을 땅 밖으로 내밀었다. 노지월동이 잘 되는 식물들은 며칠 따뜻한 날씨에 너도나도 초록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하지만 2월이다. 양평의 봄은 4월 중순이나 되어야 안심을 한단다. 일찍 싹을 틔우고 꽃이 피었다가 호된 꽃샘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는 일이 많다고 하니 보온덮개천을 섣불리 걷어내기도 어려운 일이다. 

 꽃나무들을 꽤 많이 심었다. 매화, 홍매화, 겹벚꽃, 서부해당화, 앵두나무, 살구나무, 체리나무, 라일락. 대부분 봄에 피는 나무다. 벚나무는 동네 산책로에 많으니까 심지 않았다. 집에서 보이는 옆집 마당에도 큰 벚나무가 한 그루 있다. 

 작년에 옮겨 심은 나무라, 겨울 동안에 죽지 않고 잘 살았는지 궁금하여 자주 들여다보았다. 나뭇가지마다 눈이 생겼으니 무사히 겨울을 났으리라 믿는다. 아직은 마른 나뭇가지에 존재감이 약한 눈이지만, 곧 꽃눈이 부풀고 때맞추어 봄꽃을 피워주리라 기대한다.

 작년에 가을 치고 여름같이 더운 날씨가 계속될 때는 가을이 실종된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겨울이 오긴 오는 건가 의심도 되었다. 기후 변화가 추운 겨울을 잃어버리게 만든 건 아닌지. 하지만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연속되면서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 겨울이 있어야 식물들이 쉼을 갖고, 봄에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건 자연의 이치일 테니까. 

 재작년에 아파트에서 겨울을 난 수선화가 피었을 때 그 반가움을 잊지 못한다. 겨울 동안 영하는 아니지만 베란다에서 가장 추운 곳에 두고 겨울을 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추식 구근은 땅속에서 겨울을 견디어 내야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해서 수선화와 튤립을 늦가을에 미리 심었다. 

 오후가 되니까 다시 눈발이 날린다. 서울 갈 일이 있어서 다녀왔더니 그새 마당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입춘이란 말 뜻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봄의 시작이 아니라 곧 봄이 온다는 뜻일 게다. 아직 봄이 되려면 쌓인 눈이 녹고도 한참 있어야 한다. 보온덮개천도 그때나 완전히 걷어야겠다.

 입춘. 기다리던 봄비는 눈으로 내리고 있지만 마음은 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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