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 교실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학교 도서관을 신축하는 동안, 상당한 책들을 각 교실로 옮겨서 보관하였는데, 당시 아버지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내게 여름 방학 동안 실컷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나만의 도서관이 되었다. 물론 책을 마구 쌓아놓은 보관 수준이었지만.
그 책 중에 내가 가장 많이 본 책의 종류가 SF 소설이었다. 파란 장미, 순간 이동, 날아다니는 자동차, 로봇, 우주정거장. 내용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책 속의 이야기는 내게 신세계였다.
ET의 모습을 한 외계인 삽화도 기억난다. ET 영화가 1984년에 우리나라에 개봉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초등(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이 60년대다.
SF의 장점은 무궁한 상상력이다. 재미있는 점은 예전부터 상상만 했던 로봇, 드론 택시, 자율주행차, 우주정거장은 현재 이미 상용화 되거나 개발 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실행이 어려운 것은 타임머신과 순간 이동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나 물체를 시간이나 공간을 뛰어넘어 이동하는 것이 가능이나 한 일인가.
그 순간이동을 이 이야기에서 가능하게 만들었다. 소설이니까.
차세대 교통수단인 텔레포트 캡슐 '도즈(Doze)는 전 세계 어디든 99달러로 동일하며, 전송 시작부터 완료까지 20분이 채 안 걸린다.
비행기처럼 많은 사람들이 시간 맞춰 같은 동체로 함께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1인 단위 캡슐로 24시간 아무 때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도즈 덕분에 지구 전역이 1일 생활권이 되었다.
그 외에도 손목시계처럼 차고 다니는 휴대폰에 연결해놓은 신용카드로 모든 비용을 결제하고, 렌터카 자율주행차가 일상화되었다. 지갑도 자동차도 챙길 필요가 없는 시대다.
달에 기지가 있어서 사람이 살고 있으며, 지구 멸망 200년 후를 예상하여 화성에 스마트 시티를 만들어 첫 입주자를 모집한다.
순간 이동은 모르지만, 가게에서 물건을 들고나오면 바로 결재가 되고, 현관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1인 가구에게 필수인 스마트 로봇견이 친구가 되어주고 사고도 막아주는, 자동차도 렌트하면 되니까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는 생활은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생물의 순간 이동과 복원에서 발전된 텔레포트 캡슐의 원리는 캡슐 내부의 물질(사람)을 스캐닝하여 원자 수준으로 해체해 그것을 동기화된 다른 캡슐로 이동시켜 재구축하는 것이란다. 그사이 육신이 해체되는 동안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주 등장인물은 고3인 남희수와, 중3이었던 그 동생 남태하, 악역인 서윤모, 연구원 권영조, 도즈 개발자인 비카스 등이다.
희수의 가족이 도즈를 이용하여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되돌아오는 길에 모든 가족은 무사히 도착했으나, 희수만 실종된다. 비행기에서도 사고가 생기듯 텔레포트 캡슐에서도 그 확률은 매우 희박하지만 사고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21년 후, 열여덟 살 모습 그대로의 희수는 서울 스테이션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희수의 실종 사건을 두고 릴레이 1인 시위를 하였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동생 태하는 36살이 되었으며 희수는 사망 처리가 되었다.
이동 전의 사람과 이동 후의 사람은 같은 사람인가. 희수가 이동하기 전과 후에 30g의 질량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 30g의 이물질. 의식이 끊어진 순간에 해체되었다가 재구축 되는 사이에 뭔가 클립보드에 들어온 것은 무엇일까. 한 몸에 두 인격체.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의 희수는 뇌 수술 후 사망하게 되고, 같이 있던 인격체가 희수의 몸을 지배하게 된다. 그 인격체는 미래를 보는 예지력이 있으며, 폭파하는 무서운 초능력도 가지고 있다.
화성 입주 신청 명단에 있는 사람들의 사고사 등, 태하 주변 인물들의 알 수 없는 실종과 죽음에 범죄 조직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된 태하와 희수에게 위기가 닥친다.
그 해결 과정에서 태하는 희수의 또 다른 인격체를 태하가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사건 사고에 도즈 개발자 비카스가 총지휘했음을 알고 희수는 달 기지까지 가서 비카스를 처단한다.
화성행 티켓을 담보로 보스 윤모에게 납치된 태하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희수가 달려와 초능력을 발휘하여 무사히 구해낸다.
사망 상태였던 희수는 신분증을 얻고 태하와 함께 화성에 정착한다.
3년이 지난 후 연구원 영조가 희수를 복원할 계획을 가지고 방문한다. 복원되면 제2의 인격체는 30g의 질량과 함께 사라지고, 원래 희수만 남게 된다. 영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희수를 관찰하고 연구하며, 이 소설에서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할 때 늘 등장하던 인물이다.
누가 형 희수인가. 서울로 오기 전까지의 희수만 형인가. 돌아온 후 자신과 함께 했던 제2인격체도 형인가. 태하와 원래의 희수가 아닌 희수는 서로에게 소중한 형제의 정을 느낀다.
'내가 꾸는 꿈에 조금만 더 머물러 줘.' 태하의 고백이다.
이 소설은 SF의 상상력에, 스릴러물의 긴장에, 과학적 정보를 얻기도 하는, 게다가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는 작품이다.
어떻게? 왜? 누가?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할 수도 있겠지? 미래에도 범죄는 존재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