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살아온 이야기
<책 리뷰> 파친코(이민진)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TV의 뉴스였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대학생 때 재일동포(자이니치)의 존재를 알게 되고 결혼 후 남편과 일본에서 생활하는 기회가 생겨서 재일동포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시작했다는데. 이 소설을 집필하는데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사실 나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시절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둡고 힘들고, 결국은 망하는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파친코 역시 역사적 배경이 그 시절이니, 유명세를 타지 않았다면 내가 선택해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요즘 들어 일본 재일동포들의 삶의 발자취가 궁금하기도 해서, 도서관 전자책 대출을 받아 읽게 되었다.
책을 읽고나서 그 시절의 소설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살아남은 가족의 대서사 소설로, 4대 째 한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한 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흥미로웠다.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할 듯한 재일동포의 한 가족. 처음 시작은 어디부터이며, 아픈 역사의 순간을 어떻게 견뎌내었으며,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되었는가를 선자라는 여인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그려내고 있다.
몸이 성치 않은 아버지 훈이와 가난 때문에 시집온 어머니 양진의 결혼. 고명딸 선자를 향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이 아름다웠다.
선자와 고한수의 만남, 그리고 임신. 백이삭의 폐병 치료와 결혼 후 일본으로 가게 되고. 생부 고한수를 받아들이지 못한 첫째 아들 노아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에 뿌리내려 살면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고, 심한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성공은커녕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국에 차별이 극심한 일본 사회에서 무엇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공부보다는 파친코를 통한 성공을 생각하고 결국은 그것을 이루어낸 둘째 아들 모자수의 판단은 이 집안을 일본에서 살아남게 만들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대동아전쟁, 전후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훈이가 세상을 살아온 이야기
양진이 세상을 살아온 이야기
선자가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고한수가 그 시절을 사는 법
백이삭의 삶과 죽음
모자수가 선택한 삶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이 아버지의 파친코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들은 결국 살아남았다.
역사가 어떻게 굴러가든 괜찮다. 다 괜찮다.(훈이의 말이다.)
한국인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아내는 민족이다.
그 시대도, 그곳도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