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새 May 07. 2024

아는 언니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4

어느 지인카페의 공개적인 댓글에다 '언니~~' 하고 다정한 호칭을 썼다.
 나는 그 동생에게 꼬박꼬박 존대로 답글을 썼다.
 진심으로 그녀를 동생으로 여기고 싶다.
 언니라는 호칭이 어느 때는 너무나 가볍게 쓰인다.
 "언니, 이것 좀 보고 가세요. 예쁜 것 많아요."
 옷 가게에서 쭈빗쭈빗 살만한 게 있나 망설이고 있으면 금세 따라붙는 언니라는 호칭.
 아줌마도 아니고 아가씨도 아닌, 참 두루 쓰이는 호칭이 된지 오래다.
 '날 언제  봤다고 언니래?"라는 반응은 이제 씨도 안 먹힌다.
 그래도 '언니'는 참 다정한 사이에 오가는 호칭이다.
 하나밖에 없는 친 언니의 진주식 사투리 호칭은 '엉가'였다. 엉가는 나랑 다섯 살이나 터울이 지지만, 틀림없이 한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의 핏줄로 이어진 가장 가까운 사이다.
 아직도 진주에서 엉가라는 호칭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크면서 자연히 언니라는 호칭으로 변했으니 그 뒤로는 엉가라고 부른 적이 없다.
 크면서 만나게 된 언니의 친구는 죄다 언니였다. 학교 선배들도 모두 선배 언니였다. 언니라는 호칭이 흔해져 버린 것이다.
 나는 일곱 살에 1학년에 들어가서 늘 친구들이 나보다 한 살 많았다. 내 마음에는 친구들도 죄다 언니였을 것이다.
 6학년 때는 반에서 언니 놀이를 했다. 나보다 키가 큰 친구가 있었다. 이름 끝자가 같은 친구라 내가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반 친구들이 첫째 언니, 둘째 언니...로 호칭을 하여 반 아이들이 한 자매처럼 지냈다. 그때는 남자 반, 여자 반을 나누었던 시절이다.
 그 친구를 이번 진주 여행에서 만났다. 중고 시절 한 번도 한 반이 된 적이 없어서 끊어지다시피 한 친구인데, 이번 진주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만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린 시절을 잊고 살았듯 까마득히 잊었던 친구의 모습에서, 서서히 어린 시절의 친구 얼굴을 찾아내고, 계속 만났던 사이인 양 즐겁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식을 듣고 만나고 싶었는데 이루어져서 참 행복했다.
 나는 친구 관계가 별로 길지 않은 편이었다. 모가 난 성격을 감추고 당해 연도에는 잘 지내지만, 해가 바뀌면 칼같이 안면을 바꾸는 좋지 않은 아이였다. 어린 시절의 절친이 둘밖에 안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유해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져서 모임도 생기긴 했지만, 몇 십 년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만나는 지인이 드물다.
 한 모임은 내가 제일 연장자이다. 또 한 모임은 언니들이 셋이나 된다. 직업상 호칭도 10년 세월이 지나니 ~쌤으로 바뀌었다가, ~언니로 바뀌는 중이다.
 동생 노릇은 그래도 하는 편인데, 언니 노릇은 영 자신이 없다. 내게 언니라는 호칭을 허락도 안 했는데 쓰는 이가 블친 중에도 둘이나 있다.
 그 동생들에게 쉽게 반말이 안 나오는 이유는 내가 언니 노릇에 자신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남이 나를 챙겨주는 일에는 익숙한데, 내가 언니로서 누구를 챙겨주는 일이 습관화되어있지 않아서이다.
 쉽게 언니라는 호칭을 쓰고, 언니 동생 관계를 잘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누구야?"
 "응, 아는 언니야."
 나도 그런 '아는 언니'가 될 수 있을까.
 '언니 같지 않은 언니'지만 그분들과 진심으로 언니 동생으로 지내고 싶다.
 또 은근슬쩍 언니라는 호칭으로 갈아타는 모임의 지인들에게도 좋은 동생이 되고 싶다.
 물론 하나밖에 없는 친 언니와, 이번에 연락이 되어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여주의 이종사촌 언니에게도 더 다정한 동생이 되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중 체중 관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