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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Jul 02. 2024

햇빛 화상

땡볕에 마당일 하고

 장마 사이 치고 햇빛이 강했.

 남편이 분당 장례식장에 간 사이 마당일을 했다.

예보에는 하루종일 흐림이라고 했는데, 구름이 별로 없는 맑은 하늘이다.

 가까운 친척이라 같이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삼 형제 모두 남자들만 가기로 했다고 집에 있으란다.

 휴가 받은 하루를 알뜰히 쪼개서 이것저것 할 생각이었는데, 웬 걸, 하루종일 마당일이다.

 아침 일찍 택배 보낼 일이 있어서 못했던 풀 뽑기를 시작으로(비 온 뒤라 풀이 쉽게 뽑혔다.)~

 비에 쓰러진 꽃대 세워주기,  장마가 계속된다니 쓰러질 것 같은 꽃대들도 지지대 해 주기,

화단에 직파해서 한꺼번에 모여 난 싹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포트에 심어주기,

미니 달리아 줄기 잘라서 삽목 하기,

꽃씨 채종하기,

국화존에 키우던 폼폼국화들 캐어서 따로 심어주기, 키가 커진 국화 잘라주기,

얼마 전에 산 수국 중에서 노지월동 잘 되는 것 땅에 심어주기,

텃밭의 슈퍼 오디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빈자리에 상추 옮겨심기,

잎이 허옇게 병이 난 아스타 짧게 남기고 잘라주기.

침엽수 관리 잘 못해서 죽은 것 뽑은 자리에 씨앗 파종해서 키운 심산해당화 묘목 옮겨주기.

 그간 하고 싶었지만 미루던 일을 깨끗이 해치웠다.

 점심은 대충 먹고 땡볕에 마당일을 6시간 정도 했더니, 실내에 들어와서 땀이 식으면서 머리가 띵하다. 열사병의 가벼운 증세인가 싶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다.

 샤워 후에 냉장고에서 꺼낸 마스크 시트로 팩을 해보았지만 얹었을 때만 시원할 뿐, 얼굴의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다.

 손을 찬물에 담가 얼굴을 두들겨가며 실내에서 시원하게 시간을 보내니 얼굴 온도는 내려갔는데 얼굴의 붉은 부분은 여전하다.

 핸드볼 코치를 겸하시느라 운동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셨던 아버지는 늘 얼굴이 불그레했다. 별명이 홍당무였다.

 현직에 있을 때 운동회 연습할 때(운동회날은 더 심했다.) 목에 얇은 스카프를 감고 나갔다. 보통 9월에 운동회를 하니까 꽤 더운 날씨인데도 말이다.

 깜박 스카프를 매지 않고 나가면 목의 드러난 부분이 빨갛게 되고 가려웠다. 가벼운 화상에 듣는 연고는 나의 상비약품이었다. 오히려 선크림을 바른 얼굴은 괜찮았다.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발랐어도 6시간의 마당일에는 도리가 없었다. 얼굴과 드러난 목부분(요즘은 스카프를 안 한다.)에 햇빛 화상을 입은 듯하다.

주택으로 이사 오고 화단일에 매달린 지 1년 반 만에 내 얼굴은 예전의 흰 피부가 아니다. 긴팔옷이나 토시도 귀찮아 반팔 차림으로 다녔더니, 팔도 아버지처럼 작은 점 투성이다.

 퇴직을 한 후 품위유지에 애쓸 필요가 없으니 얼굴이 검게 변하든, 팔에 점이 많든 상관이 없는데 홍당무 얼굴은 싫다. 아버지 닮은 살성이라 그리 되기 전에 얼굴만큼은 팩도 해가며 신경 써야겠다.

 하지만 매일 보는 예쁜 나의 꽃밭을 보면, 도시 여인들의 뽀얗고 매끈한 피부가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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