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덕유산리조트 도착 시간이 9시 50분이라고 앞글에서 밝혔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 전형적인 여름 날씨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다만 설천봉 쪽에는 구름에 휩싸여 있기는 했다.
곤돌라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 안개 속이었기 때문이다. 올라와서 보니 전망이 없다고 방송할 만했다.
'안개가 심해서 전망을 볼 수 없으나 환불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덕유산 위의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아래쪽의 날씨가 좋아도 위에서는 정반대의 날씨가 다반사라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것을 '산신령님이 허락해 준' 대로 즐기면 된다.라고 한다.
등산로 입구부터 어수리가 반겨 맞아준다. 함백산에서 보기 힘들었던 어수리가 여기서는 많이 보인다.
어수리
자주색 물봉선도 함백산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물봉선
참취
모싯대
송이풀
가는장구채
참취, 분취, 은분취, 서덜취, 수리취, 각시취 등 취 종류가 꽤 많다. 은분취와 서덜취는 아직 구분을 못한다. 취라는 이름이 있으니 모두 식용일 것이다. 우리가 보통 나물로 먹는 취나물은 참취, 단옷날 떡을 해 먹는 취나물은 수리취 정도로 알고 있다.
각시취가 정말 예쁜데, 군락을 이루고 있었던 함백산에서 올해는 하나도 만나지 못해서 많이 서운했었다.
속단
긴산꼬리풀
미역취
사람이 비교적 적어서 정상석 인증사진을 찍기가 쉬웠다.
구름 사이로 살짝 보이는 하늘이 신비스럽다.
원추리는 정상 주변에만 많이 피어있었다.
원래 중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원추리 군락지인데, 오히려 군락지에는 원추리 꽃이 많이 없었다. 이미 피고 졌는지 씨방을 달고 있는 것이 많이 보였다.
원추리
산오이풀이 한창이다.
산오이풀
동자꽃도 풍성하다. 환한 주황색인데도 슬픈 느낌이 드는 건 꽃에 얽힌 전설 때문이겠지. 오세암 이야기처럼 폭설에 마을로 내려간 스님을 기다리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동사한 동자승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는, 진한만큼 더 슬픈 느낌의 동자꽃이다.
동자꽃
구름 속의 덕유산 등산로. 일단 중봉으로 간다.
향적봉 대피소의 빈 테이블이 생소하다. 항상 탐방객들로 가득 차 빈자리 나기가 힘든 곳인데.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등산로 주변은 야생화의 보고다. 나중에 보니 백련사에서부터 구천동 탐방로 입구까지는 야생화가 이 곳만큼 많이 보이지 않았다.
개시호
곰취
분취
산오이풀
곰취
물봉선
바위채송화
덕유산의 명물들. 고사목이 많이 보인다.
단풍취
풀거북꼬리
꿀풀
중봉으로 가는 등산로에 자리한 평전이다. 높은 산에 오르면 이런 탁 트인 넓은 곳을 만나게 된다. 시야를 가리는 산봉우리들은 다 발아래로 내려가버리고 키 큰 나무조차도 없어 사방이 시원하다.
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반원의 하늘을 즐긴다. 햇빛이 좋아서 그런지 야생화들은 또 어찌 그리 종류도 많고 풍성한지.
덕유평전의 으뜸인 중봉에서 백암봉 삼거리 방향에 있는 평전이다. 그쪽으로 내려가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한다. 뜨거운 여름에 그늘 없는 평전을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그 방향으로 갔다가는 예전 같지 않은 체력에 힘들어할 것 뻔하고, 날머리 칠연폭포에서 주차해 놓은 들머리덕유산리조트까지 되돌아오려면 비싼 택시비를 지불해야 하므로.
<중봉 - 백암봉삼거리 - 동엽령 - 칠연폭포까지>와 <중봉에서 오수자굴 - 백련사 - 구천동 탐방지원센터>와 거리는 비슷하단다. 마음 먹으면 못할 건 없지만 계획한 대로 하산하기로 한다.
못 보던 상자가 있어서 보니 휴대용 방석함이다. 우리는 휴대용 발포 방석을 항상 들고 다니니 필요가 없지만, 탐방객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에 절로 빙그레 웃음 짓는다.
잠시 하늘을 보여주고는
다시 구름으로 막아버린다.
구름이 산등성이를 기어 넘어온다. 가끔은 그 산등성이를 넘지 못하고 맴돌기도 하는데, 이번 구름은 힘이 센 지 금방 하얗게 산 아래를 덮어버린다.
오수자굴로 향한다. 여러 번 다녀봐서 비교적 험한 등산로임을 익히 알고 있다.
구름 속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오수자굴까지 사진이 없다. 이유는 우중 등산 1에서 밝혔다. 시간당 20mm 정도의 폭우 속에 비교적 급경사인 험한 산길을 걸었다. 카메라는 배낭 속에 넣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모자를 캡으로 준비해서 우비 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다.
풀이 많이 자란 숲길을 걸어야 해서 입은 긴 바지가 젖어 다리에 감기고, 방수 기능이 떨어진 오래 신은 등산화가 질퍽거리고, 비닐 우비 속의 옷은 땀에 절어 습도와 온도를 더 높여준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건, 아니 신나기까지 하는 건, 자주 경험해 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산행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제껏 세 번의 우중 산행을 경험했는데, 이번 산행이 가장 비가 많이 오고 등산로도 험한 산행이었다.
일부러 다시 하라면 망설여지는 경험이지만 지나고 나니 두고두고 추억할 이야깃거리가 생겨서 좋다.
다만 그런 상황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하산을 하기 위해서 잔뜩 긴장하며 걸어 내려온 탓에 무릎 연골 부근에 염증이 생겼는지 통증을 느껴서 정형외과 치료를 며칠 받게 된 점이 조금 불편하다.
옛날에 오수자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살면서 득도했다고 하여 오수자굴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숙식을 해결할 만큼 오수자굴 속이 꽤 넓은 편이다. 안에는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의 넓은 평상 모양의 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데 부부팀이 내려온다. 원래 넓은 곳이라 굴 주변에서 많은 팀들이 함께 쉬었다 가는 쉼터인데,우비를 벗어 걸쳐놓고, 배낭과 스틱도 잔뜩 벌려놓아 미안했다.
'아무도 안 올 줄 알고' 이렇게 짐을 늘어놓아서 미안하다고 인사하니 괜찮다면서 쉬지 않고 그냥 하산한다.
다시 평온을 되찾은 우리는 준비한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일어났다.
그런데,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오수자굴
다시 우비를 입고, 카메라는 배낭 속으로.
백련사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폭우 속의 우중 산행을 하였다.
일주문 아래에서 쉬면서 질척거리는 등산화를 벗고, 양말도 벗어서 짜 보았더니 물이 주르르 흐른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은 날에는 여벌로 등산 양말을 준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우선 등산화를 새것으로 바꾸어야겠다.
일주문
비가 많이 온 탓에 계곡의 수량이 늘었다. 흐르는 속도도 빨라진 것 같다. 물소리가 꽤 크다.
비가 또 올까 봐 우비를 입고 내려왔다.
연화폭
백련담
평소에는 폭포 같지 않던 구천폭포가 제법 폭포의 느낌이 난다. 물소리의 음향 효과가 대단하다. 숲길을 벗어나 탁 트인 포장도로로 걷기때문이기도 있겠지만 요란한 물소리만큼 느끼는 기분이 상쾌하고 시원하다.
구천폭포
구천동 어사길은 계곡을 따라 데크길을 만들어 몇 번씩 계곡을 건너갔다 오게 만들어 놓았다. 혹시라도 계곡 저쪽으로 건너갔다가 늘어난 계곡물에 고립될까 걱정이 되어 구천동 어사길로 걷지 않고 포장도로로 계속 내려왔다.
예전에 하산길에는 거의 바파담에서 휴식을 취하고 내려왔는데, 이번에는 남편만 다녀오라고 했다. 여러 물줄기로 쏟아지는 폭포의 소가 마치 비파를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비파담이다.
비파담
영아자를 처음 본 것이 곰배령이었는데. 아주 귀한 꽃으로 알고 있던 영아자가 이곳에는 흔한 야생화다.
영아자
월하탄
덕유산 산행은 쉬운 코스도 있고, 제법 힘이 드는 코스도 있어서 산행을 즐기기에 참 좋은 산이다.
가보고 괜찮은 산은 여러 번 찾는 것이 우리의 산행 습관인데, 덕유산도 한 20번 정도는 갔으니, 우리의 단골 산행지다.
곤돌라 왕복으로 설천봉에서 중봉까지만 다녀오는 것이 부담 없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산행인데(일반 탐방객들에게는 향적봉만 다녀가는 1시간 정도의 산행이 대중적이다.), 이번에는 거의 풀 코스로 걸은 셈이다.
곤돌라 제외, 설천봉에서 덕유산 국립공원 탐방센터까지 12km, 6시간 동안 우중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모감주나무
산 아래도 비가 많이 온 모양이었다. 우리가 등산을 끝내고 날머리로 나올 때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위험하다고. 그 위험한 등산을 무사히 끝내고 귀환했다.
우중 산행이라 불편했지만, 끝나고 나니 오래 남을 추억의 산행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불편했지만 신나는 산행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