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를 그만두고, 양평에 크게 지어 올해 개관한 도서관을 출입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 도서관은 밖에서 구경만 하는 처지니 책과 거리가 먼 요즘 생활이다.
대구 언니네서 얻어온 몇 권의 책도 책상 위에 그대로 쌓여있다.
브런치 작가 야초툰의 <1+1 이불 이벤트>를 신청해놓고 깜빡 잊었다. 책을 보낼 테니 주소를 메일로 보내라는 댓글을 보고도 죄송하게 바로 답을 못했다.
야초툰 작가의 소설과 외삼촌의 시집이 함께 왔다.
직접 그려서 제작한 엽서와 메모지도 선물로 보냈다.
서평은 책을 미루고 읽지 않으려는 내게 책임감을 부여하여 꼭 읽게 만드는 좋은 독서 촉진제이다.
주인공은 지옥의 문을 지키는 악마 베스탄이다. 악마는 어떤 성정의 인물일까. 또한 생김새는 어떨까. 책을 읽으면 구체적인 묘사를 만날 수 있다.
지옥과 지옥의 신, 천국과 천국의 신이 존재하고, 별로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듯 보이는 천사들과, 격무에 시달리는 악마들의 모습에서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사랑하게 된다.
스토리는 격무에 시달리지만 어쩔 수 없이 소임을 다하는 다른 악마들과 달리 무서운 지옥의 신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불평을 해대는 베스탄이 지옥으로 갈 사람을 천국으로 보내는 임무를 띠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서 <악마의 심리 상담소>를 열게 된다.
악마는 만나기 힘들지만, 악마 같은 사람은 종종 매스컴에 등장하여 일반인들을 경악하게 만든다.
반인격장애,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은 아무리 여건을 마련해 주고 교화를 시켜도 바로잡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 악인을 어떻게 천국으로 보낼 수 있을까. 결국 베스탄(상담사 지철의 몸을 빌린다.)은 7년을 인간 세상에서 지내지만 한 건도 성공하지 못한다.
지철과 죽음의 사신 K, 죽은 영혼을 끌어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보내어 지철의 사무실에 취직한 선애, 선애의 남편 사이코패스 조주만, 층간 소음에 시달려 살인을 꿈꾸다가 지철의 사무실에 더부살이하게 된 커피 바리스타 승주, 그 위층에 사는 자살 직전의 변호사 유명한, 초등학교 시절 따돌림의 트라우마로 회피형 인간이 된 혜련, 지독한 악플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다가 명이 다하기 전에 지철에 의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 구민철. 이런 인물들이 얽히고설켜서 이야기는 톱니바퀴 물리듯 진행이 된다.
결말은 해피엔딩? 선애는 천국에 있는(이유가 있다.) 악마 훈련소에서 일하게 되고, 악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베스탄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 지철의 몸으로 살아나서상담소를 운영하게 된다. 이번에는 악마가 될 사람들을 찾아내어 명이 다하기 전에 미리 지옥으로 보내는 역할을 맡는다.
악마를 만나본 사람은 없겠지만, 악마는 많은 예술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악마 같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괴로움과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리라. 악마, 지옥, 천사, 천국은 권선징악을 원하는 사회적인 결과물이다.
그러한 것을 소재로 명쾌한 해석과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소설 '악마의 귀라도 빌려드릴까요?'. 뒷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잡고는 내려놓지 못하고 일사천리로 읽을 만큼 재미있었다.
마지막 베스탄 즉 지철의 변화가 흥미롭다.지옥에서 울부짖는 영혼들의 고통을 보고도 무덤덤해진, 더 이상 악마 같지 않은 악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옥으로 다시 가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인간 세상이 그리워 되돌아와버린~ 인간 세상의 따스함, 커피향 같은 것에 익숙해진 악마의 심리 상담소라니.
악마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편들어주고 해결까지 해 준다니. 분노에 악이 받쳐 복수심에 어쩌지를 못하거나 고통이 너무 심해 세상을 하직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때 그곳을 찾아 지철을 만나면 다 통쾌하게 해결이 될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