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친구

나이 들면 남편만 남는데

by 세온

무안공항 사고로 남편을 잃은 지인한테서 카톡이 왔다.

생각보다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은 말이 아닌 글이 주는 차분함일 것이다.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카톡으로도 전화로도 차마 전할 수 없었던 위로의 말을 브런치에만 올리고 꾹꾹 참고 있었는데.

장례를 끝냈다면서 두 딸과 예비 사위들 덕분에 든든하다고 했다.

장례도 못 치른 유족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그렇지 그 빈자리를 어찌 감당할까 싶어 마음이 짠했다.

전화는 다음에 천천히 하자고 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감정을 컨트롤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례식날 조문객으로 북적댈 때는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이후다. 둘이 살다가 한 사람만 남은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클지, 함께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할 때의 어려움도 많을 텐데. 둘이 있던 집에 혼자 남았을 때의 쓸쓸함이 또한 클 텐데.


2002년의 일이다. 남편이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

'119 불러.'라는 말과 함께 남편은 새까맣게 오그라들어갔다.

119 대원들이 들이닥치고 남편을 들것으로 옮겨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정신을 놓지 않으려 전등도 끄고 현관문도 잠그고 단도리를 잘하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 도착하고 응급처치가 끝난 다음 딸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니 휴대폰을 두고 나온 것을 깨달았다. 겨우 119 대원의 휴대폰을 빌려 용케 기억하고 있던 딸의 휴대폰 번호를 누를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인공호흡기를 단 채로 중환자실에서 15일간. 산소포화도, 간 수치 등등의 수가 오르내림에 마음을 졸이는 동안,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듣는 이야기마다 남편 상태의 위중함만 증대되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울고 다녔는지 모른다. 낮에는 외래환자들로 북적대던 진료실이 밤이 되면 아무도 없는 어두운 장소가 되는데, 보호자 대기실에서 계속 있고 싶지 않아 찾은 그곳에서 엉엉 소리 내어 몇 날 며칠을 울었다.

보름 후에도 회복이 되지 않으면 목에 구멍을 뚫어 호흡기를 연결해야 하며, 그렇게 되면 장기 환자가 된다는데, 담당교수님의 판단으로 인공호흡기를 빼고 관찰한 결과 자가호흡이 가능했고, 그 뒤로 후속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하게 되었다. 내 나이 47세 때의 일이다.

올해 호흡기 내과에서 검사한 결과가 폐기능이 80%라고 하니, 노화로 인한 일반인들 폐기능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전에도 함께 여행을 잘 다니는 편이었지만, 다시 태어난 남편은 항상 나와 함께 처음에는 여행으로, 지금은 산행과 걷기 길을 다니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퇴직까지 한 지금은 거의 떨어져 있는 일이 없이 함께 지내고 있다.


두 사람 다 성격이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 않는 편이다. 더구나 퇴직을 하고 나니 만나는 사람이 더 줄어들었다. 전원주택지로 이사오기는 했지만, 동네가 시골 마을 같지 않아서 동네 사람들끼리도 별로 소통을 하지 않는 편이다.

젊었을 때는 따로 직장을 다니고, 따로 친구들 만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부부만 남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같이 놀아줄 사람이 남편이나 아내만 남는 것이다.

고향 친구는 거리가 멀어서 만나기 힘들고, 직장 친구는 깊이 사귄 사람이 없어서 더한 것 같다. 5년씩 로테이션으로 전근을 다녀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전근하고 나면 예전 직장 친구와는 자연히 멀어지는 법이다. 모임으로 수십 년씩 만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런 모임이 많지 않다.

남편은 꾸준히 만나는 모임이 딱 하나 있었는데, 다섯 명 중에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남은 세 사람은 자연히 모임을 접어버렸다. 남자들은 안 그래도 나이가 들면 아내만 따라다닌다고 하는데, 남편은 아예 따로 만날 친구들이 없어져 버렸다.

매일 함께 눈 뜨고 함께 세끼 밥 먹고 함께 운동하고 여행을 다닌다. 가끔 따로 볼 일을 보기도 하지만 저녁에는 한 집에서 같이 산다.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것이다. 나와 함께 평생 친구로 지낼 사람은 남편이다.

우리가 양평으로 이사오던 같은 시기에 문경에 내려가 시골살이를 시작한 지인이 남편과 갑자기 따로 살게 되었다. 시골살이 일 년 해보니 남편이 일을 더 하고 싶었던가 보다. 서울 사는 친구가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다면서 취직을 하게 되었단다.

카페에 올리는 글마다 혼자 살게 되어 쓸쓸한 심정, 불편한 일들을 토로한다. 아침에 올라온 글을 보고 전화를 했다. 적응해보고 안 되면 좁더라도 남편이 있는 오피스텔에 같이 살다가 겨울을 보내고 내려가라고 했다. 그전에 남편이 그만두고 내려올지도 모른단다. 두 사람 다 갑자기 따로 살게 된 상황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몇 년이나 주말부부로 사는 사람들도 많고 기러기 아빠도 있는데. 늘 붙어살던 부부는 한쪽이 없으면 그만큼 옆구리가 더 시린 편이다.

언젠가는 둘 중의 하나가 먼저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그때 생각하면 된다.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언제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 살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도 한 때다. 나이가 들면 평생 친구인 남편이 더없이 든든하고 정답다.

갑자기 무안공항 사고로 유가족이 된 지인이 걱정된다. 두 딸이 버팀목이 되어 주겠지만, 평생친구를 그렇게 보내고 남은 생애를 쓸쓸히 혼자 살아가야 할 텐데.

지금 당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고, 꿋꿋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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