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의 늪에 빠지다

뜨개질 취미생활

by 세온


뜨개질 입문이 몇 살 때쯤일까.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어쩌면 배우고자 하는 욕구와, 뭔가를 만들어내는 성취욕을 매우 사랑하며, 남다른 도전력과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이렇게 쓰고 보니까 내가 엄마를 닮은 것이 맞는가 보다.

일제 강점기때 겨우 보통학교(지금의 초등)만 졸업했는데, 진주 기술고등학교 기계편물부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서 편물 부업을 하셨다.

그때 기계로 짠 것들을 돗바늘로 이어서 옷을 완성하는 것을 시야게(미안하지만 일본 말이다. 마무리 완성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라고 했는데, 6학년 때쯤 당당히 어른과 같은 공임? 을 받으며 시야게를 했다.

자투리 남은 실로 손뜨개질을 시작했음은 당연한 일. 이미 그전에 목도리 정도는 완성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정식으로 옷을 만드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인지, 책을 몇 권 사기는 했지만 도안을 보고 옷을 멋지게 만들어 입는 수준에는 이제껏 이르지 못했다.

작년에 나무뜨개옷을 만들고, 올해도 몇 점 만들었다. 보온 효과는 별로 장담할 수 없지만, 색이 사라진 겨울 꽃밭을 환하게 장식해 주어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래서 지인의 펜션에도 몇 개 만들어주고, 오늘 더 만들어주기로 한 겨울방학 숙제를 마저 끝냈다.

우연히 완성하다 그만둔 목도리를 지인에게서 얻게 되어 옛 실력을 살려 완성해 보았다. 완성된 것은 원주인에게 보내고, 털실을 사서 내 것도 만들었다.

틈틈이 짜던 것을 하나씩 완성을 하고 나니 작은 성취감으로 흐뭇하다.

검색해서 만들어 본 것.

뜨개질은 단순 작업 같으면서도 정교한 손놀림이나 두뇌 회전이 꽤 필요한 일이다.

기초적인 것은 단순한 편이지만 무늬를 넣으면서 짜면 규칙에 맞추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코 늘임과 줄임, 무늬의 반복 등을 고려하면서 짜는 일은 한시도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그럼에도 종종 놓치게 되는 일이 생기면 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이제껏 짰던 것을 다 풀어버린다.

뜨개질의 함정은 이런 것에 있다. 한 코 한 코 신경을 쓰며 짜는 수 시간이 다 허사가 된다. 어느 날은 하루의 반나절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뜨개질만 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 들인 시간과 수고로움을 순식간에 제로로 만들어 버린다. 시간 낭비다.

그런데, 그건 시간 낭비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실패하면서 배운다고, 틀린 것을 깨닫고, 수정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드디어는 내가 원하던 모양을 완성해 내는 성취감을 맛본다

어려운 것일수록 성취감이 크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실패했을 때 새로 재료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또한 뜨개질의 장점이다. 정말로 마음에 안 들면 이제껏 짜온 것을 모두 다 풀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면 된다!

실 한 가닥으로, 한 코. 한 코 뜨고, 한 단씩 짜다 보면 한 판이 된다. 그것을 다 모아 완성을 하면 목도리도 되고, 숄도 되고, 스웨터도 되고, 조끼도 되고, 커다란 블랭킷도 된다. 단 한 줄의 실 가닥으로.

우리네 인생 살이도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 또는 일 년이 되고, 그것들이 모여 멋진 무늬의 삶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마음에 안 든다고 다 풀어내고 새로 시작할 수는 없겠지만.

뜨개질은 단순 작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뜨개질 하는 동안에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 기차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 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하고 갔던 역에 또 가기도 하고. 생각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은 절로 정화가 된다.

오늘은 내가 오래 붙들고 있던 또 하나의 뜨개질을 완성한 날이다. 많은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주는 선물로, 하지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차마 말로 나누지 못했던 위로의 마음을 한 코 한 코 뜰 때마다 새겨 넣었다. 뜨는 동안 생각 기차를 타고 오래 그이를 생각했다.

잘못되면 다시 풀어서 무늬를 맞춰 짜고, 색 배합도 챙겨가며 신경을 썼다.

예전부터 선물을 받을 줄이나 알지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되갚을 걱정에 선물 받는 일도 불편해했다.

그런 내가 내 손으로 진심을 다해 선물을 만들었다. 부족한 솜씨지만 나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목에 두르고

어려운 일로 더 춥게 느껴질 이 겨울에 조금이라도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붙잡고 앉으면 한두 시간은 보통이고, 어떤 때는 네 시간도 붙들고 앉아있기도 하다. 마치 늪에 빠진 듯.

그런 날은 캘리그라피 연습도, 그림도, 악기 연습도 날아가 버린다. 운동하는 것도 잊어버린다.

뜨개질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먼저 뜨개질을 시작하지 않고, 다른 일을 먼저 해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실과 바늘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가벼움 때문에 쉽게 먼저 시작해버린다.

며칠 뜨개질의 늪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뜨개질을 후순위로 밀어내었다.

또 하나의 뜨개질을 시작해 볼 계획을 세운다. 이번에는 가디건이다. 한 번도 제대로 마음에 드는 것을 만들어본 적이 없지만, 시도해 보기로 한다. 엄마를 닮아 도전력, 추진력, 성취욕이 강하니까.

대신 뜨개질의 늪에 빠지지는 않도록 시간 안배를 잘 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