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맹추위를 견디기
내가 어릴 때 살아온 진주에서 겪은 최고로 추웠던 기온에 대한 기억은 영하 5도였다.
눈도 별로 오지 않아 어느 해 7cm의 적설량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 눈을 퍼서 시험관(아버지 덕분에 집에 시험관이 있었다.)에 설탕 넣은 물을 담고 아이스케키를 만든다고 법석을 떨었다.
대학을 서울로 정한 후 원서를 내고 입학시험을 보러 서울에 처음 도착한 날, 영하 17도라는 기온과 처음 만났다.
영하 5도만 되어도 춥다고 내복을 껴입던(겨울 교복이 바지였다.) 내가, 서울 아이들은 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내복을 입지 않고 서울로 왔다. 어찌나 추웠던지 서울의 첫겨울 추위를 호되게 경험한 것이다.
그나마 시험 보는 학생들을 위한 행당동 단기 하숙집 주인이 방을 따뜻하게 데워주셔서, 학교에 갈 일 외에는 방에서 꼼짝도 안 했다.
합격자 발표까지 보고 너무나 추운 서울을 탈출하듯 상대적으로 따뜻한 진주로 서둘러 내려가 버렸다.
그 뒤 대학에 입학하고 40여 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서울에서 영하 17도의 추위를 거의 못 만 난 것을 보면, 그해 겨울에 맹추위가 잠깐 다녀갔던 게
아닌가 싶다.
서울에 살면서 추운 겨울이면 내복을 꼭 입고 다닐 정도로 추위에 약했다.
아마 영하 5도쯤 되었을 거다. 11월에 갑자기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 친한 친구 결혼식에 치마 정장을 입어야 할 것 같아 얇은 스타킹을 신고 하루를 보내고 났더니 허벅지 안쪽이 빨갛게 잔금이 생겼다. 추위에 약한 피부가 터 버린 것이다. 그 후로는 겨울에는 치마 입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나이 든 지금은 영하로 내려가면 무조건 얇은 내복이라도 껴입고 다니는 중이다.
남편과 등산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또 한 번 영하 17도를 만났다. 겨울이면 눈산행이 정말 매력적인데, 그래도 영하 5도~10도 정도에 산행을 다녔지 그런 맹추위에는 처음 가는 산행이었다.
강원도 백덕산이 눈산행으로 인기 있는 곳인데, 들머리 도착해서 몇 도냐고 물어보니 영하 17도란다. 20년 전이니 그때는 지금보다 젊었고, 겨울 등산복의 보온력이 괜찮은 편이라 그렇게 추운 줄 모르고 산행을 즐기고 돌아왔다.
윈드재킷, 보온성이 뛰어난 티셔츠, 방한모, 방한 마스크, 방한 방수장갑, 버프, 스패츠로 중무장한 데다, 산행을 하게 되면 운동 효과로 몸이 더워지기 때문에 추위를 덜 느끼게 된다. 물론 내복도 입는다.
같은 영하 17도라도 바람이 불면 체감 온도가 더 떨어지고, 산을 오를수록 기온이 더 내려가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산행 기온은 아니다.
이제는 영하 10도 아래만 내려가면 산행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추위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양평에 영하 16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며칠 계속되었다. 한파주의보를 넘어 한파경보다. 썬룸의 온도가 가온을 했는데도 영하 5도까지 떨어졌다. 추위에 약한 식물들이 얼어서 죽어버렸다. 작년에 라디에이터를 사용했더니 전기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올해는 약한 전기난로로 가온한 탓이다. 그래도 30분마다 5분 이상 가열해 주었는데.
내년부터는 노지월동이 되는 식물들만 키워야 할 것 같다. 이웃들이 노지월동 안 되는 건 안 키운다고 하더니, 우리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영하 15도가 넘어가니까 썬룸 유리창에 성에가 끼었다. 예전에는 성에를 자주 보았지만, 요즘은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다.
자연이 그린 그림이 아름답다. 해가 나자 금세 사라지긴 했지만 이삼일 성에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한 겨울이라 아직 맹추위가 몇 번 더 다녀갈지도 모르겠다. 추위에 견디고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봄을 맞으면 더욱 따뜻하고 행복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