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해파랑길 갈맷길 2-2코스
2월은 짧아서 좋다. 봄이 오는 3월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일년의 시작은 1월인데도, 봄이 시작되는 3월이 되면 모든 것이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학교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에서 오는 관념이 자리잡은 때문일까. 학생들의 개학은 3월이다. 물론 9월이 개학인 나라도 있지만, 3월은 새학년이 되고 새 교실, 새 선생님, 새 친구를 만나는 시작의 달이며,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봄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다.
2월이 되었지만 영하를 밑도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응달에는 겨울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은 얼음에 미끄러질까봐 조심조심 다닌다. 그래도 낯에 느껴지는 공기가 다른 느낌이 든다.
기온보다 마음이 더 먼저 봄을 맞는다. 2월을 맞는 우리네 마음은 이미 봄이다.
봄을 찾아 여행 채비를 꾸린다. 제주 여행은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우니 부산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거기 가면 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마침 부산으로 떠난 날 최고 기온 12도를 찍었다. 하루 이틀 따뜻하다고 갑자기 봄꽃이 흐드러지거나 파릇파릇 푸른 풀밭이 요술처럼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봄!을 만났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시작해서 강원도 고성까지 50코스 총 750km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장 걷기여행길이다. 해파랑이란 명칭은 동해의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함께라는 뜻의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출저: 네이버 지식백과)
남해안을 따라 걷는 남파랑길도 이곳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된다.
갈맷길은 부산의 시조(市鳥)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로 부산의 산과 강, 해안에 조성한 길인데, 해파랑길과 겹치는 구간은 갈맷길 2-2구간이다. 아직 전 구간을 걷기에는 내 체력이 다 회복되지 않아서 우리는 동생말까지 4.7 km를 걸었다. 되돌아올 때는 택시를 이용하였다.
봄이 여기 저기 쑥쑥 올라오고 있다. 수선화 싹이다. 아직은 초록잎보다는 흙 빛깔이 더 눈에 띄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초록으로 덮인 꽃밭에 노랑 수선화 꽃이 가득하게 되겠지.
스카이 워크를 멀리 바라보며 오르막길을 힘차게 오른다. 첫 시작이니까 발걸음이 가볍다.
탁 트인 하늘과 하늘빛보다 더 푸른 바다 빛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해맞이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아파트에서는 바다도 조망되겠다 부러워하며 길을 걷는다.
겨울을 방금 벗어난 봄까치꽃이 가녀린 몸으로 겨우 꽃을 달고있다.
역시 부산이다. 갈색 톤 위주인 중부지방의 산에 비하면 초록이 많이 눈에 띈다.
생각은 했다. 혹시 동백꽃을 볼 수 있으려나. 오동도 동백꽃을 보려고 여수로 여행지를 정했다가 아직 꽃이 덜 피었다고 해서 부산으로 변경한 건데, 그 동백을 만났다. 한 송이도 반갑다.
오륙도로 향하는 유람선이 반갑다.
배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느낌은 어떨까. 카페리나 여객선 같은 큰 배는 타 보았지만, 어부들이 조업을 하는 배는 타 본 적이 없다.
속까지 훤히 비치는 바다를 보며, 강에서 느끼는 것과는 또다른 감동을 받는다. 내 몸과 마음이 말갛게 씻기는 느낌이다.
바다 건너 해운대 빌딩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보인다.
해안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멀리 수평선을 보면서 걷고, 가까이 철썩거리는 파도를 보면서 걷는다는 것이다.
소나무 숲이 반갑다. 꽤 넓은 터에 장난스럽게 구르는 솔방울들을 보며 폭신폭신한 마른 솔잎을 밟는 재미도 있었다.
갈맷길 2-2 코스 거의 끝날 쯤에 만나는 꽤 유명한 공원이 있다. 이기대는 두 명의 기녀에 대한 기록이 있다. 진주에 의기 논개가 있다면, 부산에도 두 명의 의로운 기녀가 왜장과 함께 바다로 투신하여 함께 죽은 이야기가 전해온단다.
의로운 기녀들을 기리는 마음일까. 동백의 빛깔이 화려하다.
광안대교와 해운대가 눈에 들어온다.
구리 광산의 흔적.
제주의 용두암과 닮은 바위도 만나고.
이기대 구름다리도 있었다.
데크길을 걷다가 한참을 올려다 보았다.
동생말 입구까지 왔다. 이곳에서 오륙도 해맞이 공원으로 가기도 한다.
용호만 부두를 지나 큰 길로 나가서 택시를 불렀다.
부산으로 봄맞이 걷기 여행을 정한 이유는 홍매화 소식 때문이었다. 오륙도 해맞이공원 주차장에서 유엔기념공원까지는 10분 정도 걸렸다. 평년보다 늦은 꽃 개화에 여행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유엔기념공원에 홍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에 부산으로 달려간 것이다.
봄이 빨리 보고싶어 부산까지 왔다. 홍매화가 붉게 피기 시작한다. 아직은 수줍게, 그러나 단호하게 이제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멀어서 잘 찾지 못하는 부산이었는데, 봄맞이 여행을 잘 왔다.
(2025.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