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장미가 만발이다. 장미는 한 송이도 예쁘고, 모여 피어도 예쁘다. 빨강 장미도 예쁘고, 노랑, 흰색, 분홍도 예쁘다. 살구색도 있고 연보라색도 있다. 두세 가지가 섞인 색도 있다. 색도 다양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양도 가지가지다. 장미와 같이 있으면 나는 향기만큼 진한 행복을 느낀다.
장미꽃을 키우고 싶으나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언감생심이다. 햇빛을 잘 받아야 잘 크고 예쁘게 피는 장미를 아파트에서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딸이 해냈다. 작년에 산 장미를 겨울 동안 베란다에서 죽이지 않고 가끔 물을 주는 것 같더니 드디어 그 일을 해낸 것이다. 5월이 되자 기지개를 켠 듯 잎이 제법 나오더니 드디어 예쁜 장미꽃이 두 송이나 피었다!
안산에 살던 시절, 로터리에 심어놓은 장미가 허옇게 변해서 죽어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물을 자주 주지 못했거나, 도로변이라 공해에 피해를 입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곳을 떠난 지 15년이 훨씬 넘었으니, 지금도 로터리에 장미를 키우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그것을 보고 장미가 키우기 까다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니 장미 화분을 몇 번 사기는 했다. 다른 화초는 꽤 키우는 편이라 장미도 키워보고 싶어서 사다가 키워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한 이후로 더 이상 장미 화분을 사지 않았다.
주택으로 이사가면 장미를 키울 생각이다. 화단을 만들면 어느 쪽에 어떤 장미를 심을 건지 머릿속 구상은 벌써 끝났다. 아직 절차가 남아, 건축 허가 신청도 못 하고 있는 중이라, 시간 가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일 뿐, 내 마음속으로는 이미 우리 집 정원에 장미가 만발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이웃이 올리는 새글을 매일 읽게 되었는데, 중랑천 장미를 올린 글을 보고 장미 구경 가자고 남편을 졸랐다. 가까우니까 손녀 학교 등교시켜놓고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찾은 중랑장미공원은 말 그대로 장미 천지였다. 주로 큰 꽃송이 종류의 장미를 심어 존재감이 확실했다. 가지각색의 장미가 중랑천 옆의 넓은 부지에 가득하였다.
중랑장미공원입구 일찍 갔지만 사람이 많았다. 나중에 관람을 끝내고 나올 때쯤은 사람이 더 많아졌다. 근처 학교에서 체험활동으로 나온 학급도 있었다. 사람이 많아도 좋았다. 내 눈에는 장미만 보였다. 꽃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장미를 찾아다니며 걸었다. 꽤 넓은 화단에 다양한 색의 장미를 식재해 놓았다.
중랑천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이 준공된 것이 1970년인데, 1990년 외환 위기로 어려울 때 정부 공공사업으로 장미 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계속 심고 가꾸어 와서 오늘날 멋진 중랑장미공원이 되었단다. 중랑장미공원에서는 해마다 서울장미축제 행사를 하는데, 올해는 5월 2일 시작해서 15일까지 한 모양이다. 우리는 축제가 끝난 다음에 방문을 했다. 축제는 끝났지만 장미는 계속 피어있으니까 꽃이 주는 감동은 그대로다.
제방길로 올라가니 멋진 장미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갖가지 조형물과 아치가 장미와 어울려 멋진 풍경을 연출해 낸다. 장미 여인 조각상을 비롯해 여기저기 포토존에 사람들이 붐빈다. 휴대폰 카메라 기능이 좋아진 이후 너도나도 사진에 추억을 담기 바쁘다. 그곳을 찾은 사람 모두가 사진작가요, 모델이었다. 인생 사진을 찍기에 부족함이 없는, 서울 시내에 있기에 접근성도 좋은 곳이었다.
장미여인 조각상 이곳의 장미터널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2005년 주민들의 제안으로 조성되었다니 17년이나 된 장미터널이다. 길기도 하지만 그 역사가 대단하다.
장미터널 입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장미 화단의 모습 손녀 하교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시간이 부족하여 끝까지 가 보지 못하여 섭섭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되돌아 나왔다.
남편에게 장미를 제일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남편은 아마 모든 꽃을 다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꽃 저 꽃 볼 때마다 감탄을 하고, 매달 몇 가지의 꽃 화분을 사는 것을 소확행으로 삼으니 말이다. 그런데 중랑장미공원에서 사실은 장미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 말을 마음에 두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산행을 한다. 이번에는 내변산 산행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남편이 내변산 산행을 끝내고 다음날 곡성 기차 마을로 가자고 했다. 장미 축제가 있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감기 기운이 있어서 걱정하면서 산행을 계획한 터라 중랑 장미공원에서 장미를 실컷 보았으니까 안 가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가자고 한다.
일요일 아침 숙소에서 일찍 출발하여 곡성 기차 마을로 향했다. 매표소 앞에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9시부터 시작한다더니 조금 일찍 매표를 시작해서 다행히 많이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정식 명칭이 제12회 곡성 세계 장미 축제란다.
장미 품종을 공부하고 싶어서 이름표와 꽃을 같이 찍다가 너무 많아서 그만 포기했다. 나중에 검색해봤더니 카메라에 담을 양이 아니다. 1,004 종의 세계 장미 수억 송이가 피어있다고 자랑한다. 그 규모가 대단하다.
코로나 통제가 이제 막 풀리고 난 뒤라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많았지만 축제 내용도 다양하게 준비가 되어있고, 관람객들의 관심도 대단해 보였다.
축제 시작 이틀째인데 무대에서는 행사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공연 행사도 있고, 체험행사도 많이 하는 모양이었다.
공연 리허설 장면 장미 여신 포토존 천사의 미로원 오늘이 며칠이냐고 묻는데, 남편의 대답이
"어제가 5월 21일이잖아. 부부의 날."
이라고 한다. 그제사 장미를 좋아한다는 나를 위해 부부의 날 선물로, 아픈데도 불구하고 곡성 장미 축제장을 샅샅이 훑으면서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러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양각색의 수많은 장미꽃 속에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 무리한 것 때문에 한 이틀 열감기로 고생한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소중한 장미꽃 나들이였다.
곡성장미축제의 맛을 보았으니, 내년에는 내가 가자고 조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