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토요일 함안을 찾았다. 함안군 법수면 악양둑방길과 대산면에 있는 악양생태공원 꽃길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사실 악양둑방길은 좀 늦은 시기에 방문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멋진 풍경에 반해서 직접 가 보기로 하고 결정했을 때는 축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으니까.
어쨌든 꽃은 아무 사심 없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우리는 자연이 허락해 준만큼의 행복감을 맛보고 돌아왔다.
내비게이션에 함안 악양둑방길을 치고 서울서 출발하여 아침 8시쯤 도착한 곳은 법수면 악양삼거리에 도착하였다. 둑방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듯한 카페와 음식점이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화장실도 깨끗하였고, 주차장도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여유가 있었다.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둑방을 향해 출발하였다. 악양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800m 정도 더 가면 임시주차장이 있다는 플래카드 안내가 붙어있었다.
사실 남편이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내변산 산행을 했다가 무리를 했는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소백산 국망봉 산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하고 걷기길을 가기로 해서, 악양둑방길 꽃양귀비도 볼 겸 함안에서 가까운 가야산 소리길로 계획을 잡고 숙박을 오도산 휴양림으로 예약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둑방을 올라서니 풍차가 먼저 인사를 한다. 경비행기 비행장에 비행기가 몇 대 대기해 있고 그 왼쪽으로 붉은빛 계통의 꽃양귀비와 보랏빛 계열의 수레국화 꽃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예쁜 꽃밭을 만날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함안 악양둑방길 꽃밭을 오려고 마음먹은 것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마을 길을 따라 둑방을 향해 걸을 때까지도 꽃길을 볼 수가 없어서 걱정이 좀 되었다. 축제일이 5월 7일부터 29일까지라는데 이제야 방문하였으니. 내년에는 잊지 않고 좀 더 이른 날짜에 악양둑방길을 방문해야겠다.
늦게 온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지 작은 꽃밭에는 오래 피는 메리골드, 페튜니아와 루피너스 같은 꽃들이 식재되어 있었다. 파란색 보트와 멀리 보이는 풍차와도 잘 어울린다.
본격적으로 꽃길을 걷기 시작한다. 늦게 오면 사람이 많아 풍경 찍기가 어려워, 우리는 늘 아침 일찍 움직인다. 이날도 새벽 4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덕분에 쾌적하게 꽃길을 다닐 수 있었다.
꽃양귀비는 이미 씨방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다. 피크 때에 비해 꽃대는 줄었겠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빨강 빛깔을 자랑한다. 꽃양귀비가 빨강만 있는 게 아니다. 분홍, 흰색, 두 가지가 섞인 색. 함께 어울려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꽃 속에 서 있으면 나도 꽃이 되는 느낌이다.
수레국화도 색이 다양하다. 보라(파랑에 가까운), 연보라, 자주색, 연분홍. 어떻게 이런 다양한 색깔을 만들었을까. 자생인지 원예종으로 개발된 것인지 궁금하다.
나무도 산도 멋진 풍경이었지만 꽃이 좀 아쉬웠다. 원래 안개꽃과 조화를 이루는 멋진 곳인데, 안개꽃은 모두 씨앗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얀 안개꽃과 꽃양귀비, 수레국화가 어울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맛보고 싶었는데. 나를 악양둑방길로 행하게 만든 바로 그 풍경은 내년으로 미루어야 했다.
어쩌겠는가. 늘 산에 가서도 하는 말이지만 자연이 주는 만큼만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만개한 꽃을 만나러 갔는데 덜 피었거나 다 져버린 뒤라든지, 단풍을 보러 갔는데 단풍이 별로 예쁘지가 않다든지, 눈꽃산행을 갔는데 눈이 내리다 말았다든지 그런 경우를 가끔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누리기로 한다는 마음으로 대한다. 즐거움을 등산에 집중하면 덜 섭섭해지기도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만하면 예쁘다. 예쁜 꽃길을 걷는 즐거움에 이미 행복하지 않는가.
양산을 쓴 사람들이 좀 있었다. 꽃들이 좋아하는 햇빛은 사람들에게는 눈부신 불편한 존재다. 나는 양산은 잘 쓰지 않는다. 등산용 모자면 그만이다.
방문객들 대부분 패션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꽃과 촬영하기 좋은 색깔을 고르고, 하늘하늘 원피스나 카디건 같은 부드러운 소재의 옷을 입고, 모자, 양산 등도 어울리게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더 가면 임시 주차장이 있는 곳인데, 작은 장마당이 준비되어 있었다. 함안의 명물 수박과 관련된 아이템이 많았다.
거기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예쁜 꽃을 카메라에 더 담아보았다.
다 져버린줄 알았던 안개꽃이 꽃양귀비와 잘 어울렸다.
꽃이 모여있는 모습이 꽃다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약간 파스텔조의 부드러운 느낌이다. 참 잘 어울리는 꽃끼리 심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포토존 조형물이 여러 군데 마련되어 있었다.
9시가 넘으니까 사람들이 늘어난다. 나중에 주차장에 가 보니까 관광버스도 두 대나 들어오고 있었다. 축제 막바지 손님들로 북적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둑방 위 풍차 옆에 포토존이 눈에 띈다. 아래를 조망하기 좋은 위치에 두 사람이 앉아 꽃 감상 중인가 보다.
시동 건 비행기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다가, 하도 오래 걸리길래 그냥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