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공

by 세온

올해 초부터 남편이 염색을 하지 않는다. 그새 흰머리가 자리를 잡아 매력적인 은발 머리가 되었다.

시아버지가 50대부터 대머리였기 때문에 그 유전의 고리에서 벗어나려고 탈모 예방 및 치료에 제법 큰돈을 쏟아부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베레모 하나 사다 줄까?"

라는 말에 웃음으로 대답하는 남편의 머리를 쓰윽 만져 보았다. 영락없는 할아버지 머리칼이다.

언제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세월이 가는 건 맞는데, 나이가 얼굴에 나타나는 것도 막을 수는 없는데, 마음은 여전히 20년 전이나, 40년 전이나 별 다를 게 없다.

지나다니며 만나는 가족 중에 특히, 중년의 부모와 한창 싱그러운 20대 자녀의 모습에 눈길이 저절로 간다. 엄마 아빠는 나이 들어가는데, 자녀의 모습은 '참, 예쁘기도 하지.'라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나도 나이 드는 건 맞는데, 아직 노인이라는 호칭에는 항복하고 싶지가 않다.

현직에 있을 때, 내가 직장의 최연장자이던 시절에도 나보다 아랫 나이인 동료들과 지내면서 짐이 되지 않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썼다.

체육이 있는 날 수업 끝나고 힘이 들어서 아이들에게 내가 할머니라서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면,

"선생님은 절대 할머니가 아니에요."

라고 강하게 표현할 정도로 씩씩하게 살았다.

다만 60대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만 59세 6개월 되던 해에 명퇴를 했다.

직장에서 퇴직한 것은 현직에서 밀려난 것이 맞다. 나를 필요로 하는 현장에서 그만 나와도 대신할 사람이 많으니 그만두셔도 괜찮다고 명퇴금까지 주어가며 밀어낸 것이 아닌가.

나 아니라도 내가 있던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늦는 느낌이다.

돈 버는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에는 성취감이 없다. (연금으로 생활에 지장은 없다.) 손녀 돌보미로 딸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일로 성취감을 느끼기에는 살짝 부족한 느낌이다. 여행과 산행을 하고, 글을 써서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는 일에 바빠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세상에 꼭 필요한 위치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우리가 매주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할 일이 많아서 쉴 틈이 없는 자신과 비교하며 여유가 많아서 좋겠다고 표현하는 이웃이 있었다.

할 일이 많은 댁이 부럽다는 내 말 뜻을 그 사람이 온전히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돈 버는 직업을 갖고 싶지는 않으니 아이러니한 자세다.

정말 바쁘게 살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출근 준비를 해서 겨우 시간 내에 주차장으로 튀어나가다시피 출근했다. 아이를 키울 때나, 다 키워놓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항상 같이 차를 타고 나를 출근시키고 난 후 남편이 출근했기 때문에 아침시간이 늘 바쁠 수밖에 없었다.

출근을 하고 잠시 숨 돌리면 빈 교실이 금세 아이들로 가득 찬다. 내 손길 하나하나, 내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그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로 쏟아진다. 시간은 빨리도 간다.

수업이 끝나고서도 학습 결과지 처리나, 다음날 수업 준비로 바빴다. 교구 만드는 걸 좋아해 집에 와서도 자주 손을 움직였다. 필이 꽂히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가 12시를 넘긴 적도 많았다. 그렇다고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닌데.

수업이 끝나고서도 학습 결과지 처리나, 다음날 수업 준비로 바빴다.

교구 만드는 걸 좋아해 집에 와서도 자주 손을 움직였다. 필이 꽂히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가 12시를 넘긴 적도 많았다. 그렇다고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닌데.

지금도 밥을 빨리 먹는 습관이 고쳐지지 않는다. 1학년을 좋아해서 많이 했는데, 4교시 끝나고 점심 먹기 전에 알림장 쓰기, 인쇄물 나눠주기 등 저학년이라 담임이 신경 써서 해줘야 할 일이 많다. 자연히 밥 먹을 시간이 줄어든다. 점심 먹고 알림장 검사까지 해야 하니 밥 먹는 속도가 빠를 수밖에. 아마 내가 그런 일에 요령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정말 바쁘게 살았다.

바쁘게 산 만큼 성취감은 비례했다. 바쁜 것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바쁠 필요가 없는 지금 성취감을 느낄 일이 별로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만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직장 동료와, 아이들, 학부모, 하다 못해 단골 옷가게, 세탁소, 도매 문구점 주인도 이제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코로나 상황도 영향이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행동반경이 많이 줄었다.

딸 부부가 맞벌이를 하느라 바쁘다. 직장이 집에서 1시간 거리라 일찍 나가야 하는데,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한다. 아이 학교 등교를 도운답시고 아침부터 부부가 덩달아 바빠본다. 오후에 엄마가 올 때까지 교대로 돌보미 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습관이 되어서인지 손녀는 할머니랑만 공부를 하겠단다. 그래서 학원 끝나고 데리고 오는 것은 운전하는 할아버지가, 공부는 할머니가 맡았다.

퇴근하고서 딸이 저녁 하고, 빨래 등 집안일을 하느라 바쁜 모습을 본다. 처음엔 빨래와 집안일을 도와주었는데, 서로 불편하여 본인이 도맡아 한다.

사실 내가 딸을 키울 때는 더 바빴다. 도와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었으니까. 시부모님은 딸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키워주시고, 시동생네와 같이 살면서 그 집 손자, 손녀를 키우셨다. 참 고마우신 분들이다.

손녀 공부를 도와주면서 딸이 바쁘게 일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나의 그 시절을 회상해본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런 생활이 참 소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로 돌아가 그렇게 살아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 같다. 딸은 자기의 인생을 야무지게 살고 있는 것이다.

맞다. 이제 그들의 세상이다. 딸이 주인공이고, 어린 손녀가 주인공이다. 얼굴에 나이가 느껴지는 우리는 그들이 자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흐뭇하게 보아주고, 큰 도움은 아니라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우리 능력으로 도와주면 된다.

세상은 그들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여유가 생긴 시간들을,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만큼 음미하듯 살아가면 된다. 크기도 줄고, 시간도 줄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인공의 역할만큼 살아내는 일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야겠다.

바쁘지 말고, 여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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