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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Mar 21. 2022

두물머리 풍경 속에

양평 두물머리 나루길

 양평을 자주 간다. 올해 안에 양평에 집을 지어 전원주택 살이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이미 양평 사람이다.

 양평 하면 두물머리를 먼저 생각할 정도로 두물머리는 양평의 명소다. 두물머리는 말 그대로 두 물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 머리를 뜻하는 말이다. 한자로 옮기면 양수리(兩水里)가 된다 남한강과 북한강은 양수리에서 합쳐져서 한강이 된다.

 날이 풀리면서 미세먼지가  시작되었. 어느 해부터인가 봄날 따뜻하면 미세먼지를 걱정하는 시절이 되었다. 여행 중에 미리 사전 투표를 끝낸 우리는 대통령 선거일에 당일로 양평을 다녀오기로 했다. 두물머리나루길 트레킹이다.

 양평 물소리길 1코스는 양수역에서 시작해서 신원역으로 향하는데, 두물머리나루길은 양수역에서 출발하여 두물머리를 한 바퀴 돌아 운길산역까지 가는 것으로 양평 물소리길 1-1코스라고도 다. 예전에는 두물머리 물래길이라는 명칭이었는데, 이번에 왔더니 두물머리나루길로 되어 있다. 이정표에 두 가지 이름을 다 사용한 것을 보니 아마 이름을 새로 정한 모양이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춘천 물레길과 혼동되어 조정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물머리나루길은 경기옛길인 평해길 4코스이기도 하다.

 날씨는 맑음이지만 파란 하늘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경치가 정말 좋은 곳인데, 어쩔 수가 없다.

 녹색이 없는 강가에는 갈색빛의 갈대가 대세다. 뿌연 시야가 아쉬운데 물속 철새들의 모습이 보인다. 새들을 촬영하기 위해 커다란 망원 카메라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진작가들의 모습도 보인다. 커다란 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대포 카메라라고 한단다. 정말 대포 같이 다. 망원렌즈로 새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처럼 촬영할 수 있는 게 부럽기는 하지만 무거운 장비를 들고 걷기 여행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세먼지만 없으면 정말 좋을 텐데. 남한강은 새들의 놀이터인가 다. 오늘은 강가를 따라 걸으며 새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면 세미원이 보인다. 연꽃으로 유명한 공원이다. 오늘은 세미원을 가는 게 아니니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또 새들을 만난다. 아마 식사 시간인가 다. 자맥질을 하고는 바로 부리에 먹음직한 물고기를 물고 나오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고개만 내밀고 유영하는 녀석들이 서너 마리 있었는데 아마 물속으로 자맥질할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원래는 세미원에서 두물머리로 통하는 배다리길이 있는데, 침수되어 길이 막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선 52척을 연결하여 만든 배다리는 2012년에 준공되었다고 하는데, 목선 하부의 부패가 심해져서 결국 철거하고 재설치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현장을 보니 이미 절반 이상이 물속에 잠겨있다. 작년만 해도 세미원에서 두물머리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배다리는 침수되어서도 묘하게 아름답다. 물 윗부분이 물에 비친 것이 합쳐져 특별한 무늬처럼 보인다. 물에 잠긴 청사초롱까지도 색을 보탠다. 슬픈데도 아름답다. 비애미(悲哀美)인가...

 데칼코마니다. 바람이 없어서 미세 먼지가 있는  맞는데, 바람이 없으니까 반영이 확실하게 보이는 게 반전이다. 흐릿한 모습이지만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이 느낌은 무얼까.. 새 한 마리가 물에 비쳐서 두 마리로 보인다. 섬도 나무도 위아래가 대칭이다. 신비스럽다. 청명함이 아쉬운 대신에  꿈속 같은 예술을 선사하고 있다. 

연밭은 아직 봄이 아니지만  기온은 이미 영상 8도. 완연한 봄 날씨다.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듯 관광객들이 많다. 두물머리에서는 사람도 풍경이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 줄기가 한데 어울려 더 큰 물인 한강이 되고, 서울을 지나 인천 앞바다로 긴 여행을 하기 위해 만나는 곳이다. 사람들은 왜 이곳을 고향처럼 찾고 싶어 할까... 두 강이 모여서 커다란 물이 되는 이곳에서 태아적 어머니의 양수 속 같은 감동을 느끼는 건 아닐까. 사람들은 여기서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그저 강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어서 기념하고, 가끔 물수제비를 뜨기도 다. 강 가에서 사람들은 고향에 온 것처럼 아늑함과 평화로움과 행복함을 느끼게 되는 듯하다.
 두물머리에 오면 꼭 찾는 포토존이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르는 나무 등걸과, 두물머리 액자.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사람들은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인증 사진을 찍는다. 추억 한 자락이 만들어진다.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의 수피가 하얗게 빛이 난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라 그런 건지 백색의 수피가 멋있다.

 길은 계속된다. 아까보다는 사람이 적다. 본격적으로 걷는 길에 들어선다. 갈대와 마른풀과 가지만 남은 나무도 물과 어울리고, 하늘과도 어울려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길도 사람도 그 속에 함께 어우러진다. 녹색으로 가득 찬 다른 계절에는 가려져 볼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의 풍경이다.
 슬픈 이야기를 담은 비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잠시 머문다. 요트 선수의 비석이다. 일찍 간 젊음이 아까운 것을 누군가는 알아주어야 덜 섭섭하지 않을까 싶다.

 큰 나무 밑에 의자가 보인다. 누구든 앉을 수 있는 자리. 앉기는 하지만 소유하지는 않는 자리. 그래서 누구에게든 기다리면 공평하게 내어주는 자리. 나무 꼭대기는 까치에게 내어 주었다.

 햇살에 두 꼬마가 씽씽 킥보드를 타고 달린다. 뒤에는 엄마 아빠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따라오고 있겠지. 쉬는 날 온 가족이 나와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양. 두물머리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포근히 안아 보듬는다.

 용담대교는 양서면 용담리와 신원리를 이어주는 아주 큰 다리다.  이 다리를 지나 북한강 쪽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면 강 건너편에 운길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쉼터를 찾아 배낭을 푼다. 우리의 단골 휴식터다. 탁 트인 강과 하늘. 이런 풍경을 보면서 커피도 한 잔 하고 간단한 간식을 먹는다. 자연 속의 성찬이다. 무슨 일이건 쉼표가 필요하다. 길게 가기 위해서 잠시 쉬어가는  것. 걷기길이나 인생길이나 마찬가지다.

 쉼터를 지나 표지판을 따라가면 한강물 환경생태관이 나온다. 오른쪽은 밭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밭에 파를 잔뜩 심었었는데, 지금은 빈 들이다. 봄이 왔으니 곧 뭔가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꽃이 없으니 풀꽃도 반갑다. 두물머리의 매화는 꽃몽오리만 겨우 맺혀서 피려면 아직 한참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꽃이 화려한 봄이 기다려진다.

 다음 코스는 수풀로라는 공원이다. 환경 생태공원인 수풀로 공원은 지금은 빈 가지 마른 풀만 있지만, 제철에는 갖가지 야생화와 푸른 숲으로 아름다운 양서군의 대표 공원이다. 수풀로 공원에는 생태 체험용 길잡이 책을 준비해둔 코너가 있었다. 유아, 초동 저학년, 초등 고학년, 중학생, 성인용 등으로 구분되어 만들어 놓았는데, 길잡이책을 이용해서 아이들과 생태 체험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수풀로 공원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드디어 북한강 철교를 만난다. 원래는 경의중앙선이 다니던 단선 철교였는데,  복선화 되면서 양수 철교가 만들어지고 나서 사람과 자전거가 다니는 길로 정비되었다고 한다. 다리 이쪽은 양평, 저쪽은 남양주다.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 유명한 곳이라 안내판, 쉼터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다리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막힌 데가 없다. 숨통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어서 오래 서 있고 싶었다.

 드디어 남양주 도착. 다리 길이는 총 564m라고 한다. 운길산역까지는 거리가 가까웠다. 전철을 타고 양수역으로 향한다. 운길산역에서 운길산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수종사도 보인다.

 총 트레킹 거리 7.92km,  올 때는 2시간 50분이 걸렸지만 되돌아갈 때는 전철 타고 5분도 채 안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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