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 매화와 산수유다. 3월이 되면 광양 매화와 구례 산수유가 거의 동시에 피게 되는데, 서울서 꽤 거리가 있는 남쪽 지방이라 맘먹고 내려가서 두 곳 다 여행하고 오는 일이 많았다. 올해도 그렇게 두 곳을 다녀왔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함박눈이 온다. 강원도에도 눈이 많이 온단다. 숙박 예약을 안 했으면 관악산 갈 수도 있었는데... 강원도도 갈 수 있는데. 이번 겨울에 눈 산행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니 눈이 비로 바뀐다. 비 맞으며 다닐 각오로 우산을 챙기고, 먼저 구례 현천마을에 도착했다. 현천마을은 산수유로 유명한 상위마을이나 반곡마을만큼은 잘 알려져 않아 조용한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비가 오는 날씨인데도 관광버스가 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래도 금방 빠져나가서 복잡하지는 않았다. 작고 아담한 마을에 낮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어서 짧은 산책도 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작은 저수지와 온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 년 전에 종편 채널에서 '자연스럽게'(전인화 출연)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좀 더 알려졌을 것 같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산수유와 멋지게 어울리는 영춘화를 만났다. 노란색 색상이 거의 같아서 아주 잘 어울린다. 영춘화는 아래로 늘어지는 성질이 있어서 담장 위에 심으면 정말 멋진데, 집주인이 선택을 아주 잘한 것 같다. 이미 포토존이 된 듯 여러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간다.
비가 와서 계속 우산을 쓰고 다녔다. 비가 와도 산수유는 산수유다. 노란 빛깔이 흐린 하늘인데도 기죽지 않는다. 산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의 모습이 신비스럽다. 비가 오니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마을이 온통 노랗다. 마을이 산수유 노란 봄에 싸여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걱정을 하면서 반곡마을로 향한다. 반곡마을은 계곡이 멋진 곳이다.현천마을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반곡 마을이다.
가는 길에 보니 가로수가 모두 산수유 노란 꽃이다. 주변의 산도 모두 산수유 노란 꽃이다. 구례 산동면 전체가 노랗게 물든 것 같다. 차가 움직이는 중이라 눈에만 담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 반곡마을길 이름이 산수유 꽃담길이다. 이름이 참 예쁘다. 서시천이라는개천을 따라 길이 이어지는데 개천 가에 노란 산수유 꽃이 매우 아름답다. 반곡마을로 온 이유는 몇 년 전에 계곡을 끼고 산수유 꽃에 둘러싸여 걸었던 추억을 되새기려 다시 찾은 것이다. 개천 건너는 대음마을이라는데, 홍준경 시인의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간이 많이 없어서 간단히 대음교를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 다시 돌아왔다. 다음에 산수유 꽃담길(반곡마을)만 찾게 되면 그때 한 번 더 걸어보아야겠다.
다음날, 다압 매화마을을 일찍 방문했다. 한 바퀴 돌고 시간이 남아 전날 못 가본 상위마을로 향했다. 다시 노란 산동면에 들어서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봄에, 도로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온 산이 노랗게 물든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운전은 남편이 하니까 나는 또 차창 밖의 노란 풍경에 행복해진다. 사진 찍기는 어려워서 역시 눈에만 담는다. 상위마을은 반곡마을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간다. 반곡마을부터 일방통행이 되어 있어서 되돌아 나오지는 못하고, 한 바퀴 돌아야 나갈 수 있다. 우리는 마을 위쪽에 있는 제법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전날 비가 와서 진구렁이 군데군데 있어서 조심해서 주차를 해야 했다. 주차장 옆에도 노랑 산수유 꽃이 만발이다. 강렬한 빨강색 산수유 열매 포토존도 여전하다. 방문객이면 필수로 인증사진을 찍는 장소다.
산수유는 천년쯤 전에 중국 산동성 지방에서 지리산 산골로 시집온 처녀가 가지고 오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 산수유 시목이 산동면 계척마을에 있단다. 구례 산동면 마을에서는 제주 귤나무처럼 산수유 세 그루만 있으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해서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고도 한다. 마을에 큰일을 한 그 처녀의 시목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전날 온 비가 밤에 눈으로 바뀌었을까. 상고대 같기도 한 하얀 산이 보인다. 봄과 겨울이 함께 있는 귀한 장면이다. 더 잘 찍어보고 싶었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만큼 느낌이 잘 담기지 않은 것 같다.
본격적으로 상위마을 탐방에 나선다. 여기저기 노란 물감을 흩뿌린 듯 노란 산수유꽃 천지다. 가슴속까지 노란 물이 드는 듯하다. 노란색 행복에 절로 환한 미소를 띤다.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서 계곡으로 가는 길을 찾았더니 길이 막혔다고 돌아가라고 한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새 집이 많이 들어선 느낌이었는데,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계곡 옆에 나란히 집을 짓고 길을 막아버린 모양이다. 개인 소유지라니 어쩔 수가 없긴 하다. 다시 내려가 다리에서 개천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전에는 계곡을 따라 끝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돌아 나오는데 못내 아쉽다.
나오는 길에 설산의 모습을 한 번 더 담아본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라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