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날씨

(2025년 17호 창)

by 연명지

연명지


첫눈이 습기를 품고 내리던 날, 갑자기 오는 소식은 뜻밖의 일

‘왜요’ 라는 말이 털썩 주저앉는다


지난봄을 묵독으로 내려놓고 잠적한 습기찬 이별에 대해,

오랫동안 시큰거리는 날씨를 염려하며 안부를 물었었다


우울증이 깊어 슬픔을 얼리러 떠난 그의 날씨를 모르는 체,

고작 우리가 한 일은 그의 손전화를 울려주는 일이었다.


더는 읽히지 않는 그의 날씨를 생각하며 꽃잎이 마른 카페에서 눈 덮인 북한산을 망연히 바라본다

구름의 랩같은 것들이 조그맣게 오므라든 곳에서 습눈이 날아온다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아서 그의 시를 한 장 한 장 들여다 본다

때로는 시를 놔주는 것이 은밀한 거래라고, 시의 안쪽을 멀리서 보라 했었다

어디에도 죽음 같은 우울은 보이지 않아

줄이 안 맞는다며 튀어나가는 시를 부끄러워 하던 저녁이 눈물을 지핀다


돌아올 수 없는 그의 장난기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눈에 묻어온,

잘 지내라는 말은 시집 속에 두고 왔으니 남겨진 마음은 알아서 정리하라 한다


살아가면서 져주어야 할, 줄이 안 맞는 시도 있다는

문장을 조용히 경청하며

늦은 조문 끝에 사선으로 잘려나간 날씨를 봉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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