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

by 연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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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지


파미르 고원의 마르코 폴로 양은

아몬드꽃을 좋아하고 K-POP을 따라 부르는

가수 지망생이었어요


지망생,

아름다운 직업이지요

바람의 숨결에 리듬을 타며

초원을 걷는 지망생

페스튜카풀을 꾹꾹 씹으며 겨울을 견딘

야생 염소를 사랑하지요


겨울의 짐승들은

겨울 지망생이겠죠

설산의 유령, 눈 표범은 눈 지망생일 거고요

초원에 엎드리면 풀이 흔들리고

돌의 등을 뒤집으면 물고기가 헤엄치는

자연의 지망생들,

배에서 강이 흘러야

목소리가 트인다는 마르코 폴로 양

목덜미를 물려 피가 흘러도

포기할 수 없는 아이돌 염소의 노래


눈이 녹으면 표범도 녹을 거라는

가요는 어차피 표절이었어

달빛이 어두워지고

능선을 끌고 가는 긴 꼬리의

높고 황량한 땅 파미르의 눈 표범,

고산의 유령.


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이 방심한

설화의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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