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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명지 Aug 02. 2023

신데렐라 형님

    연명지

     

 나는 신데렐라 형님

 깍두기를 잘 담그지

 자정은 나의 홈그라운드

 내 발에 딱 맞는 펜과 타자기가 기다리지

 책상은 나의 마차

 수난사와 핍박에 대해 쓰고 있지.

 졸음은 계모같이 찾아오지

 쓴 커피는 이복 언니처럼

 내 속을 쓰리게 하고

 동서들은 나를 보고 자꾸 형님, 형님

 부르고 나는 신발이 아닌

 정신을 잃고 삐뚤어진 코를 한

 빨간 코의 왕자를 기다리지.

 그렇지만 어둠은 불완전한 비밀 항아리

 달의 왼쪽을 닮아있지

 잠을 뒤집어 박쥐처럼 매달려 

 깍두기를 썰듯 파롤과 랑그를 썰다 보면

 누군가의 충고는 근엄한 양념

 발육이 좋은 양념들이

 깨진 항아리 밖으로 졸졸 새어나오지.

 내 눈을 빨갛게 물들이는

 검은 자정을 한없이 뒤적이며

 올빼미를 통과하는 아침

 야무지게 익은 깍두기 한 접시

 호박 마차를 기다리다 새우잠을 잔

 태양 쪽으로 기우는 아침,

 나는 밤의 여신 신데렐라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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