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무심히 내리긋는 비는
베니스의 이마에 잿빛 얼룩으로 남겨지고
골목까지 파고드는 물길
방금 우기 속으로 걸어간 꽃잎들을 살려낸다
물길과 물길은 서로의 숨소리를 견제하며 무겁게 몸을 섞고
뒤통수를 때리는 소낙비 낡은 곤돌라를 밀며 간다
서로 다른 꽃잎들 차가운 비에 젖는다
오래전 베네치아에 살았다는 베누스*는
젊은 애인의 오줌으로 머리를 적셔
햇볕이 타는 테라스에 앉아 머리를 말렸다네
성경을 버리고 오페라를 만들었지
황금빛 머리를 휘날리며 리알토 다리에서 노래를 불렀지
시간을 거스르며 서 있는 산마르코 광장에서
성경을 품에 안은 검은 눈의 그녀는
부우 부우 배가 떠나는 소리를 가슴에 담으며
바다의 문턱을 넘지 못한 신들의 뒷모습을 전송하네
끝없이 출렁이며 봉합되지 못하는 검은 물결 사이로
베두타의 어두운 풍경들 그림엽서로 내려오고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의 간극이 길어지는 날은
길을 잃어도 좋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입구
한 무더기 꽃잎들 서로 멀어지며 라팔로마를 부르네
*베누스: 미의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