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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명지 Sep 23. 2023

나만 모르는 다음 모자


                        


눈을 감아야 보이는 새를 만지는 밤

숲에서 새 한 마리 날아간다

날이 밝으면 날아가 버리는 어둠처럼


모자가 새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새가 날아들고

모자에서 새를 꺼내는 일은 단순하지 않아

발목이 하얗게 떨릴 때까지 바라보아야 한다


손목을 긁히면서도 새에게 잡혀있던 손으로 슬픔을 빻는다


멀고 먼 서랍 속의 작은 모자

엄마, 모자를 벗으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나요?

죽은 척 엎드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돌돌 마는 오후

새들은 매번 다른 목소리로 외출했다 돌아오고

누군가 나를 흔들고 지나갈 때마다 모자를 산다


모자를 사지 않는 날은 나를 꽁꽁 묶어 모자 안에 숨긴다

불현듯, 모자 속에 네가 숨어있을 거라는 까마득한 생각을 한다

문이 없는 모자는 새들의 방

모자의 직전은 쓰고 난 후보다 더 슬프다고 중얼거리며

오려두었던 이름을 꺼내 새의 목에 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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