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우탄 하고는 못 살아
동기들과 함께 7시간을 넘게 난기류를 타며 인도네시아로 날아왔다.
우리는 인니의 수도 자카르타 우이대학에서 현지적응을 위해 두어 달 머물게 되었다. 한국에서부터 달고 온 기침은 약도 듣지 않고 점점 심해져 밤잠도 설치고 눈물, 콧물 다 빼도록 멈추지 않았다. 슈퍼마켓 한편에 진열되어 있는 기침약을 여겨보고 있다가 기침하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하는 심정으로 4가지 맛을 사 와서 하루에 하나씩 먹었다. 두 번째 먹을 때부터 확실히 기침이 줄어들었지만 대신 잠은 늘었다. 그렇게 아플 때도 한국이 그립지는 않았다.
근데, 코이카 임지배정을 받는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나의 임지가 너무나도 생소한 깔리만탄 섬이라는 것이다. 코이카 지원당시 깔리만탄 파견내용은 없었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컴퓨터 교육분야 단원이어서 깡시골은 가지 않겠지라고 혼자 착각하고 있다가 저 머언 섬 어딘가로 파견된다 하니 한국에서 주변정리를 하며 다잡고 온 마음도 심하게 요동을 쳤다. 같이 온 동기 몇몇은 수도가 있는 자바섬 근처나 동기와 함께 배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면접 때 어디 가도 외롭지 않을 것이라 어필한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된 것인가...(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먼저 파견된 선배가 컴퓨터 분야의 지원 필요성을 느끼고 증원요청을 한 것^^ 선배 고마워요❤)
인도네시아는 크게 주요 섬인 자와(자바), 수마트라, 깔리만탄, 술라웨시 4개 섬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 섬 북방에 위치한 섬이 깔리만탄 섬이다. 영어로는 보르네오 섬이라 불리어 우리에겐 가구회사? 이름으로 익숙한 섬이며 나무, 숲, 광산으로 가득한 천연자원의 보고, 오랑우탄의 안식처로 유명한 곳이다. 코이카에 지원할 때부터 안락한 도시생활은 포기했었지만 막상 푸른 숲으로 둘러 쌓인 정글의 섬에서 오랑우탄들과(아니었다) 2년을 살 것을 생각하니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뭐? 깔리만탄? 그게 어디야? 세상에, 정말 오지로 가버린 거야?”
인도네시아로 간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이름도 생소한 깔리만탄섬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나무와 하늘만 있는 곳에서 잘 견딜 수 있을까? 미지의 장소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 또한 옅어지고 있었다. 난 어쩌면 동기 중에 제일 먼저 귀국하는 단원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수도에서의 현지적응 훈련도 마치고 근 3개월을 동거동락했던 동기들과 헤어져 드디어 임지부임을 받아 코이카 단원으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때는 1월이었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 다시 차로 4시간을 들어와야 하는 오지 아닌 오지 깔리만탄 섬의 작은 도시 싱까왕
자전거로 출퇴근이 가능한 작은 마을, 뭉게구름이 지붕 위에 걸쳐있는 곳, 말레이시아와 인접해 있어 육로로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쉬었다 가는 곳, 인도네시아에 처음 들어온 중국인들이 터를 잡아 그들의 고향과도 같은 곳, 지금도 마을 인구의 반이 중국인인 곳, 그래서 인도네시아와 중국 두 나라를 느낄 수 있는 곳, 국민의 90%가 이슬람교임에도 불구하고 돼지고기를 파는 시장이 있어 주인아저씨한테 ‘삼겹살’이라는 말을 가르칠 수 있는 곳, 이슬람 사원인 마스지드와 불교사원이 나란히 있는 곳, 새해를 3번 맞는 곳(신정, 이슬람새해, 구정), 내가 지나가면 중국말로 말을 거는 곳, 그곳이 바로 싱까왕이다.
오랑우탄은? 물론 없다. 2년 뒤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분명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나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