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만나기 시작한지 4개월 후면, 3주년이 되던 어느날. 그가 나에게 울며 전화했다. 널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지만 너가 나에게 너무 좋은 사람이라 이런 내 마음이 너무 죄책감이 든다며말이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많은 고비를 이겨내고 혼자서 마음을 잡았던 건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이렇게 하루만에 이별을 고하고 있다.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영상통화로. 나는 불같이 화를 내며 물었다. 내가 너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반년을 같이 살았을 때 왜 말하지 않았냐, 너의 고향을 같이 가고 집에서 지낼 때 왜 말하지 않았냐,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제3국에서 만났을 때, 심지어 우리 엄마를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갔을 때, 왜 그 때 말하지 않았냐고. 원망섞인 목소리와 배신감에 찬 눈빛으로 나는 그에게 쏘아붙였다. 그는 자기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서 울며 내게 애원했다. 우리는 맞지 않는 게 너무 많다고, 너와 만나고 난 후 나는 로봇이 된 것만 같다며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나도 그와의 이별을 종종 생각해봤다. 그가 게임에 정신팔려 나를 혼자 설거지 하게 했을 때, 내가 오는 길을 한 번도 위험하다며 마중나오지 않을 때, 민망하고 싫은 소리는 나를 시킬 때, 나한테 경제적인 도움을 은연중에 받을 때도 나는 그 사람을 위한 거라며, 그 사람이 민망할까봐 걱정하며 내 선에서 처리했다. 내가 과연 이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을까?를 끊임없이 의심했지만 괜한 불안일거야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에게 나의 이런 마음을 들켰을 때 그는 잠시 시간을 갖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거의 기절을 할 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를 사랑한걸까? 아니면 그가 내 일상에서 없어지는 게 불안했던 걸까?
그는 사귄지 두 달 후에 애정이 식었고, 나는 2년이 지난 후 애정이 식었다. 하지만 모든 연인이 평생 불탈 수는 없는 거라며 따뜻하고 서로를 챙겨주고, 상대방이 무너졌을 때 옆을 지키는 것이 사랑이라며 그는 내게 말했다. 내가 머리를 바꾸고, 옷을 새로 사고, 아무리 화장을 해도 그는 내게 먼저 예쁘다는 말을 해준적이 없다. 나는 표현력이 서툴다고만 생각했지만 마음 속 한구석엔 그가 나를 실제로는 사랑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그 상자를 자꾸만 열려고 할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나는 그의 이별선포에 울며기며 헤어짐은 없다고 막았다. 나도 무수히 많은 이별 생각을 했지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너도 권태기를 이별과 착각하지 말라며 나의 트라우마까지 언급하며 이별을 막았다. 내가 이별을 고하고 그를 떠나는 건 괜찮았지만, 그 반대는 받아들일 수 없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고 나는 최대한 그에게 자유와 신뢰를 준다며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는 울며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고 했고 나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가 울며 정말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를 사랑하기는 했니? 라는 질문에 그가 선뜻 대답을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힌다. 우리의 시간을 의심한다. 우리의 사진을 보며 그가 진심으로 활짝 웃은 사진이 없는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헤어지지 않았다. 그와 헤어진 후의 일상을 난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너무 이기적이지만, 널 사랑하지 않는 것 같지만 이별은 아직 내가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나는 그를 사랑이 아닌 죄책감과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묶어두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