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읽다가 자이언트의 전감독 나가시마 시게오씨가 근육파열을 미트 굿바이(Meat Goodbye)라고 불렀다는 애기를 읽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스쿼시를 하다가 근육이 파열이 된 적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문득 얼마전에 Sprint를 하다가 나도 허벅지 햄스트링이 파열(?)된 적이 있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늘 가는 집 근처 공원을 달리고 있었다. 늘 그렇듯 마지막 50미터 정도를 가능한한 최대한 빠르게, 내가 마치 우사인볼트가 된 것 처럼 뛰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게 신이 났던건지 아니면 지난 밤 간식을 못먹게 해서 복수를 했던건지 평소에는 그러지 않던 제제가 갑자기 내 다리사이에 뛰어들었고 나는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넘어졌다.
다행히도 무릎을 꿇은 자세 비슷하게 젖은 노면에 슬라이딩을 했기 때문에 손목이나 무릎에 충격이 가지 않게 미끄러졌고 부끄러움에 주변을 빠르게 살핀 후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났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되새겨보면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내 몸상태에 약간은 우쭐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해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아스팔트가 아닌 잔디위를 달리기 시작했고 속도를 내기 시작한지 몇초나 지났을까, 허벅지 뒷쪽에 뭔가 툭하면서 끊어지는 느낌이 났고 더 이상 걸을 수도 없는 허벅지를 끌며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어정쩡하게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바보같은 결정과 어찌보면 당연한 상황에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그리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다리를 붙잡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신음을 내며 부슬부슬 떨어지는 빗속을 평소같으면 10분도 안 걸릴 거리를 30분을 걸려 걸어서 집에 왔고 그 뒤로 한 달도 넘게 뛰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그 기억들을 더듬어 보고 내 행동 패턴을 보니 나는 정말 바보같게도 이런 비슷한 일들을 과거에도 겪었었다. 바보같이 지난 경험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2021년 발리에 혜진이 동생네 부부와 함께 발리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서핑을 워낙에 좋아하지만 잘 하지는 못하는 나는 발리에 간 김에 레슨을 받기로 결정했다.
나름 호주에서 해 봤다고 재밌게 레슨을 받고 서핑을 즐기던 와중에 들이닥쳐 오는 파도에 맞서 보드를 굳이 붙들다가 어깨가 빠져버렸다. 평소에도 어깨가 빠지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보통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과하게 늘어나는 어깨가 워낙에 약했던지라 놀랬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고 정말 바보같이 다시 물속을 향해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들어갔고 아주 조그만한 파도에 이번에는 제대로 어깨가 빠져버렸다. 그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를 깨물고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리고 여행 초기였던지라 남은 여행기간동안은 캐리어도 제대로 못끄는 신세가 되어버렸던 적이 있다.
으, 너무 아팠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 스트레칭을 하다가 빠지고, 차에서 짐을 빼다가 빠지는 약골 어깨를 보유한 30대가 되어버렸다.
나이가 든다는 걸 느낄 때가 이런 때인 것 같다. 어릴 적에는 다치면 금방 낫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다치고 나면 앞으로 평생 불편하게 살겠구나 하고 생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여러가지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간다. 트라우마라고 하면 엄청난 것 같지만 사실 별거 아닌 것들을 일상속에서 겪어내는 중이다.
먼저 원인이 불명하지만 어두운 방에 문이 닫혀있는 게 너무 싫다. 그래서 꼭 문을 열어놓고 있거나 밖이 보이게 해 놓는데 아무래도 혜진이는 불편한가보다. 그리고 어두운 밤길, 특히 비포장도로 혹은 잔디밭과 같이 표면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걸을 때는 꼭 엄지발가락쪽으로 힘을 주면서 걷게 되고 바닥을 신중하게 살피며 걷게 된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도 그런 것 같은데, 오른쪽 발목을 늘 접질린다. 혜진이는 내가 발목을 접질릴때마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어떻게 하냐며, 발목운동을 하라곤 엄청 무섭게 나를 혼낸다.
그리고 몇가지가 더 있겠지만 어깨가 또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왼쪽어깨를 쭉 펴고 힘을 주어야 할 때는 의식적으로 엄청난 집중을 해서 힘을 준다, 혹시라도 어깨가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고통을 되새기며 집중한다.
다행히도 최근에 몇 달동안 어깨가 빠지지 않았고 달리기도 다시 시작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없었던 공포감이 생겨버렸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과정과 경험들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 인생을 살아가면서 불가피 한 일이겠지, 그리고 큰 사고를 겪어 평생 장애를 겪고 살아가지 않아도 됨에 감사를 해야하는 게 맞지 싶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잘 때 어두운 방에서 잠을 자고 혜진이가 옆에 있기에 문을 닫아놓고 자도 괜찮을 때가 있고, 어두운 밤거리를 걸을 때가 있고 서핑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부디 걷고 만지고 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하는 기본적인 감각들과 신체들이 나이가 들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 전까지 유지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