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억이 있다.
예전에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일까, 한참 강남역 근처에 YBM에서 일본어 수업을 들었던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근처에 던킨도너츠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커피를 사먹는 돈이 너무 아까웠고 그 만한 여유돈도 없던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던킨 도너츠에 들어가서는 커피를 주문했다. 아마도 위층에 올라가 앉아 있으려고 했던 것 같다.
주문을 하려고 카운터 앞에 서니 괜히 긴장을 하곤 단 500원이라도 싼 거를 시키려고 금액을 보다가 이상한 이름들 중에 하나를 시켰다. 예전에 맛은 너무 없었지만 어차피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으니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했던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적어도 그랬다고 생각했다. 커피가 나와서 테이크아웃잔을 들었는데 너무 가벼워서 깜짝 놀랬고 아마 내 놀라는 표정을 직원도 봤을까 싶어 급하게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서 뚜껑을 열었는데 설마했던게 역시나 내가 주문한 건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에스프레소였던 것이다(물론 당시에는 그 차이를 몰랐다). 한국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고 또 누가봐도 어려보이는 내가 에스프레소를 시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일테니 아마 직원도 알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호주이기 때문에 Long Black, Latte, Chai, Matcha, Dirty Chai, Long Mac Topped up 등등 능숙하게 커피를 주문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사실 늘 먹는 건 라떼다. 그런데 최근데 Fremantle에 Gino라는 이탈리안 카페를 자주 가게 되었는데 커피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고민하다가 아포가토(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넣은 커피)를 먹기 시작했는데 이 조합이 정말 기가막히다는 생각을 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에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넣으면서 아이스크림이 녹는 동안 나에게는 여러가지 선택권이 주어진다. 마치 같은 돈을 내고 조금 적지만 여러 맛을 맛볼 수 있는 Tasting Board처럼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에스프레소만도 맛볼 수 있고 아이스크림만 한 스푼 떠 먹기도 한다. 그리고 약간의 아이스크림을 떠서 에스프레소를 조금 같이 먹으면 혀에 닫는 순간 곧 사라질 뜨거움과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이 어우러진다.
커피를 너무 빨리 마시게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는 훨씬 더 그 즐거움이 큰 것 같아, 요즘에는 만약 조금이라도 앉아있을 것 같다면 어김없이 아포가토를 시키게 된다.
처음 혜진이와 같이 호주에 왔을 떄는 1년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 커피를 사서 먹었다. 심지어 당시에 살고 있던 아파트 바로 앞에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 거리가 있었는데 커피 한 잔 사먹을 돈이 아까워서 한 두번?정도 사먹었던 것 같다.
근데 요즘은 좀 과하긴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쨋든 아포가토를 시키고 가벼운 커피잔을 들면 여지없이 던킨도너츠가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