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25
나는 어릴적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어릴적 기억 뿐만아니라 중고등학생때의 기억도 희미하고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도 많이 없는 걸 보면 지극히도 평범하게 살았던 것 같다. 스무살이 되면서 처음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려 해병대에 지원을 하면서 조금은 흥미로운 여정이 시작됬다. 군대를 다녀와서 일년이란 시간을 인도에서 지내게 되고 한국에 돌아오기 몇 달쯤 전에 나는 한 잡지에서 아래 제목의 글을 발견한다.
“단돈 삼만 원 들고 떠난 219일간의 세계 무전여행“
내용인즉 제목처럼 저자인 류시형님이 유럽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무전으로 여행을 한 기록이었다. 돈이 있어야 여행을 한다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인도에서 살며 체득한 위기대처능력,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높아진 적응력 그리고 이십대 초반의 젊은 패기로 나는 인도에서 돌아오자마자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국내여행을 해보고자 자전거를 타고 45일동안 반시계방향으로 무전여행을 하며 조금의 경험을 쌓고, 또 그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루트를 정할 때는 괜한 경쟁심으로 류시형님보다 더 큰 도전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네팔을 시작으로 인도 파키스탄을 거쳐 유럽으로 넘어가는 여정을 잡았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걱정을 무릅쓰고 나는 그렇게 네팔로 향하는 30시간 비행기를 타게되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기에 세번을 이착륙을 하며 중국, 티벳을 걸쳐 네팔에 도착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20kg가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시골 버스터미널같은 공항을 나와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스쳐지나 지나가는 차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고 어쩌다보니 일자리를 찾게 되기도 하며 두려움과 설레임 속에 드라마틱한 하루를 보내다가 6개월이 조금 넘어서 누나의 결혼으로 일단락되어 한국에 돌아왔고, 한국에서 몇 개월을 보내곤 이번에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시작으로 여행을 다시 시작했고 아프리카와 유럽, 미국횡단으로 마침표를 찍고 2014년이 되어 한국에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인 혜진을 만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찾고자 2천만원을 들고 호주에 와서 산지 어언 7년이 되는 지금은,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인지, 우리는 안락하고 안정된 삶을 살다가 또 다시 자발적인 시련을 겪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이유야 많겠지만 결국 오래 엉덩이 붙이지 못하는 나와, 또 그런 나와 비슷한 혜진은 하고싶은 것 혹은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것에 엄청난 무게를 두고 살기 때문에, 몇개월전부터 한국에 일이년정도 살아보는 건 어떨까라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그 빈도가 조금씩 잦아지며 마침내 진지한 주제로써 수면위에 올라왔을 때 직감적으로 알고있던 것 같다. 결국 가게 될 것이라는 것.
지난 7년중에 4년동안 영주권을 받겠다고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노력했고 영주권을 받고나선 하고자 일로 직장을 옮기곤 3년정도가 지나서야 이제 여유롭게 삶을 영위할 여유가 생겼다. 남들한테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할테고 우리조차도 굳이? 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보다는 긍정적인 궁금함이다.
정말이지 자발적인 시련일 수 밖에 없다. 집도있고 차도 있는 호주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한국에 가서 원룸을 알아보고 있고, 영업직인 나는 일년을 쉰다는 것은 지난 3년간 쌓아온 것들을 창문밖으로 내던지는 꼴이기도 하다. 단 한가지는 믿도 끝도 없이 한국에 가서도, 또 다녀와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