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025
최근에 친구의 추천으로 아니타 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를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책에서 우리의 인생이 태피스트리와 같다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의 삶 속의 경험, 인간관계, 과거, 현재, 미래 또한 각자 독특한 하나의 실로써 존재한다는 말이다.
암환자로써 시한부 선고를 받고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에서 누워있던 그녀는 임사체험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되는데 이 경험을 통해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내가 최근에 읽었던 이하영 작가의 나는 나의 스무살을 가장 존중한다에서 말하는 “미래의 기억”과 어느정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봤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른 차원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연결되는 경험을 하는 장면으로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또, 올해 초에 골드코스트에 가서 들었던 부동산 세미나에서 한 스피커는 전화통화를 할 때 우리의 목소리가 상태방에게 전달되는 것에 대해 말하며 우리는 에너지로 둘러쌓여있다고 말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니 우리가 핸드폰을 통해 말을 하면 그 진동이 전압으로, 그리고 그 전압이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변하고 압축된 후 전송되고 그게 다시 전기신호로 그리고 진동으로 바껴서 듣는 사람이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 현상은 마치 매트릭스에서 우리 주변이 0과1의 초록색 숫자인 이진법으로 구성되어 있는 장면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 이런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모두 에너지로 되어있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4차원 공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이하의 차원만 볼 수 있지만 그 보다 높은 차원에서는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능하고 아니타가 임사체험에서 느꼈고 영화에서 표현된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차원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책에서는 또 한 예로, 전화가 울리거나 초인종이 울리는 꿈을 꾸다가 일어났는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떠오른 기억중의 하나가 있다. 어릴적 꿈속에서 내 오토바이 바퀴가 펑크나는 꿈을 꾼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실제로 바퀴가 펑크나 있던 경험이 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그저 신기하다고 여기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연치않게 “어떤” 경험을 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계속하다보니 론다 번의 시크릿이나 최근에 읽었던 이서윤&홍주연작가의 더 해빙이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면 우주의 힘으로 그 일이 이루어진다. 라는 문장 자체로는 실소가 나오는 말이지만 앞에서 말한 에너지와 고차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틀린말이 아니다. 다른 책인 벤저민 하디의 퓨쳐셀프에서 미래의 내가 원인이 되어 지금의 내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과 같이 내가 지금 내리는 결정이나 선택은 어떻게 본다면 수 많은 미래의 나 중 내가 바라는 모습이나 될거라고 믿는 나의 영향을 받는 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일 수도 있다는 궤변론적인 가설이 성립된다.
현재의 나, 내가 있는 공간과 내가 지금 읽는 책, 경험하는 일들이 내가 원하고 내가 그리는 미래로 부터 영향을 받았고, 현재의 나는 그 과정 중에 있다. 아니타가 책에서 표현하는 불꺼진 방(존재하지만 단지 보이지 않기에 믿지 않는다는 사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들은 존재한다. 다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기 힘들어한다)에서 약한 불빛으로 보일듯 말듯 주변을 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마저도 삶이 혹은 미래의 내 모습이 지금의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일까라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을 해야할 지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답을 찾아보려 사색을 해 본다. 크리스탈 장수처럼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핑계를 대며 억지로 내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며 현실의 삶에 안주하는 것 역시 나의 어떠한 모습의 하나이겠지만 결정을 내리는 매 순간을 돌아보면 마음 깊숙히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 지, 사실 어떤 결정이 맞는 길인지 알고있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단지 불확실함이나 걱정, 두려움 때문에 그 결정이나 행동들을 미루고 있다면 결국 나는 크리스탈장수의 길을 걷게 될테이고, 그렇지 않고 나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고 다른 어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겪어낸다면 나는 산티아고처럼 나의 신화를 찾아나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크리스탈장수가 메카로 떠나지 않는 일 또한 그 나름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테니 그 것마저도 그 나름대로 “틀린” 길이라고 볼 수는 없을것이다.
나의 현재 상황에 대입해본다면 지난 수년간 이뤄놓은 것들,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삶”을 정리하고 잠시나마 내가 길 위에 있는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원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지만 그저 안정적임을 핑계삼아 그 상황에서 계속 살아간다면 나는 결국 내가 추구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저버리는 것이다. 물론 누가보아도 현재 처한 상황이 안좋다면 오히려 쉬울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 삶도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고민의 시간이 조금 더 걸렸던 것 같다.
안정적인 삶이란 또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느정도의 위치가 되었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던 그 삶은 안정적인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안정적이지 않은 삶이 될 수 있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 또한 적지 않다. 쉽게 예를들어 갑자기 어느 날 차사고가 나서 일년을 혹은 적어도 몇 달을 일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삶또한 안정적일 수 없다.
책을 마무리하며 추가로 감명깊게 읽은 부분을 포함한다.
“모든 태피스트리는 이미 짜여있고, 따라서 내가 내 삶에서 일어나기를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은 저 무한한 비물질적 차원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내가 할 일이라곤 이 무한한 영역으로 흘러들 수 있도록 지구 차원에 있는 내 자아를 확장시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므로 뭔가 바라는 게 있다면, 밖으로 나가서 구하려고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확장해 우주 에너지가 여기 내 현실 속으로 흘러들도록 해야한다.“
“특정 사고방식이나 결과에 더 집착하면 할수록, 혹은 새로운 모험을 겁내면 겁낼수록, 그 전개는 더욱 느려질 것이다. 내가 과정에 열려있지 않기때문이다. 우주 에너지가 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곧 그들이 틀렸다고 판단한다는 뜻이며, 따라서 내가 그들을 내 바람이나 사상에 부합하도록 고치려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간의 그 지점에 응당 그래야하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영혼의 목소리에 따라 사는 것, 허용의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한다. 이는 아무런 판단 없이 자기 자신이 되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존재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순간에 머물면서 감정과 느낌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 내 행동이 ‘행위함’에서 나오는지 ‘존재함’에서 나오는지 보려면 매일매일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감정이 뒤따르는지 보기만 하면 된다. 결정의 동기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열정인가? 내가 날마다 하는 모든 행동들이 삶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행동이 두려움의 결과라면 나는 ‘행위하는’ 상태에 있다.“
다시 한 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울로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빗대어 적자면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자아의 신화로 이끌어 가는 길을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그 길이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일테고 그렇게 하는 방법은 존재함의 상태에 혹은 허용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결국에 나는 보물을 찾는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믿지 않고 혹은 인정하지 않고 다른 방법에 집착할 수록 나는 겻길로 새고 결국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며 심지어는 크리스탈 장수처럼 꿈을 가졌었다는 미련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