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구 Apr 06. 2024

인생의 숙적, 완벽주의.

뭐 해? 일단 저질러!

완벽주의는 사람을 망친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조금만 더 나은 계획을 세우고자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왜냐?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더욱 큰 만족도를 얻기 위해서. 실패의 쓴맛을 보기 싫어서. 그 마음 다 이해한다. 나 또한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이기에. 

게다가 요즘같은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은 모든 것들을 추천해준다. 내가 따라올 수 있게 모든 것들을 정해주다시피 한다. 영상이며 책이며, 선물이며, 식당이며 여행이며... 심지어는 '20대 추천 진로'이라는 키워드가 자동완성 상단에 노출되기까지 한다. 고백컨데 나도 모르게 슬며시 마우스가 그 키워드 위로 향한 적이 있었다.  무언가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완벽주의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결심과도 같다. 다소 강한 표현이긴 하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는 지나친 리스크 회피는 경계해야 한다는 의식을 반드시 가질 필요가 있다. 

모든 걸 알고 진입하기란 불가능하다. 직접 겪어야만 와 닿는 나만의 감각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겉에서 보던거랑 실제 안으로 들어와서 겪는 경험은 사뭇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해여 할 일을 덩어리로만 두면 답이 없는 것이고, 잘게 부수어서 1번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면서 배운다는 마인드로 가야한다. 

책을 읽겠다면, 무작정 아무 책이나 펴 들고 책상앞에 앉아야 하며

등산을 갈거라면 어느 산을 갈 건지부터 정하는 일.



저녁의 고려대 이과캠퍼스 전경



나 또한 저급한 완벽주의에 잠식된 바 있는 사람이다. 완벽주의의 실체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데에 엄청난 부담과 노력이 실리게 만드는 '시작의 적수'이다. 늪을 건널땐 재빨리 다리를 이리저리 뻗으며 옮겨다녀야 하는데, 어디로 뻗어야할 지 고민만 하다가 그자리에서 깊은 늪속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마는 꼴이다.

생각할 시간에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가 뭘까?



그런 마인드 중심에는 자신에 대한 너무 높은 기대가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같이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과 커다란 기대를 받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더더욱 이런 경향이 짙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sns도 단단히 한 몫을 한다. 얼마나 가공되었을지조차 모르는 타인의 빛나는 '순간'을 멍하니 바라보며 스스로를 끝없는 비교의 굴레로 들이민다. 이제부터라도 의식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은 실패에 대해 너무나도 엄격하다. 그저 한 번 시도해본 것 뿐인데, 실패하면 다시는 그쪽을 쳐다도 보면 안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니까. 1등만 알아주는 사회, 남들 하는만큼은 해야하는 사회. 눈치와 비교, 완벽주의로 무장한 민족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역설적으로,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데에 일정부분 기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회 풍토를 바꿀 수 없다면, 그저 주변환경 탓만 할 게 아니라 나 자신의 가치관이라도 고쳐 먹어야 한다.

-무엇을 시도할 때, 1~2번의 기회는 스스로에게 더 주자.

-실패의 다른 이름은 시작이다.

-실패한 것과 실패자가 된 것은 다르다.

-완벽주의는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는 나쁜 결심이다.

-sns에 올라온 타인의 빛나는 하루보다, 현실에서 실패를 경험한 나의 하루가 훨씬 더 값지다.



우리는 하루빨리 완벽주의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의식하고 바뀌려 하지 않는다면 노년에 병상에서 '지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들이나 떠올리고 앉아있을 게 틀림없으니...

자신의 실패에 관대해져야만 상대의 실패와 착오에 대해서도 넉살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완벽함의 강박을 버려라.






작가의 이전글 목표보단, 목적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