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음 태엽 시계

by 보포름

똑딱똑딱. 예전엔 초침 소리라도 들렸는데 무소음 시계로 바꾼 후로는 집 안이 고요하기만 하다. 분명 저 속에서 태엽은 바삐 돌아가고 있을 텐데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시계에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 태엽일 텐데 소음 한 번 없이 조용하고 정확하게 시계를 작동시킬 뿐이다.

나도 이 집에 있다. 아주 분명하게.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 옷매무새를 봐주고 지난밤 끊겼던 수다도 잠시 이어 본다. 쌀쌀해진 날씨에 감기에 걸릴까 염려스러워 따뜻한 생강보리차를 보온병에 담아준다. 현관 앞에서 즐거운 학교 생활을 보내고 돌아오라고 품에 꽉 안아준다. 아이들이 등교하면 소란함이 사라진다. 는 조용한 무소음 태엽이 된다.


부지런하지만 조용히 돌아간다. 나와 있는 물건들을 안으로 집어넣고, 청소기를 돌린다. 방마다 돌아다니며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를 돌린다. 아이들이랑 만든 오래된 미술작품 하나를 몰래 버린다. 언젠간 버려야 할 예쁜 쓰레기들이 많다. 버린 게 들켰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둬야 한다.


정리된 집안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짧지만 길게 내 시간을 갖는다.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지만 오늘은 학부모 모임 약속이 있다. 약속 시간까지 1시간 반이 남았다. 집에서 조용히 사부작사부작, 취미를 즐긴다. 집 안에 시간이 고인다. 그 안에 나도 고여있다. 조용히 고인 시간을 띠리링 알람소리가 뚫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갑다. 그동안 마음이 어수선해서 자주 보지 못했는데 반겨주는 미소에 어색한 웃음으로 답한다. 학교일, 학원정보, 문화생활에 관한 리액션 수다가 오가는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가 올 시간에 맞춰 간식을 만들어 둔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와 간식을 먹으며 학교에 있었던 이야기를 종알 거린다. 쌀쌀한 날씨에 빨갛게 물든 콧등도 기특한 날이다. 간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런 날엔 유독, 어디를 향해야 할지를 아는 아이들의 발걸음에 뿌듯함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왔고 간식을 다 먹은 후 알아서 학원 갈 준비를 하는 모습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괜히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다시 묶어준다. 아이들이 비운 집에 나는 다시 무소음태엽이 된다.


가족이 모이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집으로 들어올 때 따뜻하고 맛있는 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다. 그런데 아이들이 매번 잘 먹는 것도 아니고 장난을 치기도 해서 식사 시간이 나의 기대와 많이 다를 때도 있다. 오늘은 그 다른 날이었다. 화기애애한 날도 있지만 혼내다가 식사시간을 망치기도 한다. 난 분명 똑같이 맛있게 만들었는데 밥맛이 매일 다르다. 쓰거나 달거나.


과일을 마지막으로 주방을 마감한다. 마감 시간은 늘 8시 15분. 어떻게 해도 이 시간이 당겨지지 않는다.


티는 안 나지만 하루를 평화롭게 돌리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이 있다. 가끔 이런 평화로움이 내 마음에 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무소음 시계를 보고 있으면 쓴 눈물이 난다. 달달한 하루가 내 조용한 눈물 위에 세워지는 기분이다.


쓰거나 달거나 내 하루가 맛은 났으니 하루를 맹탕으로 보낸 건 아니라고, 하루가 닫히는 끝에서 뒤돌아 보면 평화로운 하루였다고 다독인다. 그래도 이제 똑딱똑딱. 내 소리를 들어보려고 한다. 쓴소리보다 달달한 소리로. 똑딱똑딱. 기록을 해야지.


똑딱똑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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