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좀 더 편안해지길
눈꺼풀이 떨리며 점점 의식이 돌아온다. 꼼지락꼼지락, 발가락을 오므려본다. 몸도 곱송그리며 조금씩 현실감각을 찾는다. 이불의 감촉이 유독 부드러워서 잠결 사이에 더 머물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이불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괜히 혀를 굴려 마른 목 넘김을 한다.
시큰, 눈물샘이 깨어난다. 이대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눈물이 그대로 흐를 것 같다. 잠시 숨을 멈추고 뒤꿈치를 최대한 바깥쪽으로 밀어 본다. 종아리 근육이 늘어나면서 근육이 완전히 깨어난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 눈을 끔뻑끔뻑, 천천히 일어나 이불을 들어 올린다.
요즘 불안과 수면 장애로 약을 먹고 있다. 30분 안에 잠이 들고 중간에 깨지 않는 게 신기하다. 일어나지 않을 불안에 대해, 깊은 수면이 어렵다는 점에 대해, 불편함을 인정하고 병원을 찾길 잘한 것 같다. 너무 편안해서 아침잠에서 깨는 게 아쉽다. 남편이 다정하게 깨우고 알람소리를 들어도 눈꺼풀을 쉽게 들어 올리지 못한다.
덜 깬 잠을 짊어지고 발코니에 나와 앉는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 솜털 위에 오소소 쌓인다. 후- 한 번, 두 번 크게 숨을 쉬면 눈이 맑아지고 시원한 공기가 한 바퀴 순환한다. 세수를 하고 아이들을 안아준다. 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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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는 늘 어색함과 불편함이 있는 곳이었다. 증상이 없을 때 가는 병원은 응급실 가는 것만큼이나 주저했다. 참을 수 있으면 위급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나는 늘 잘 참는 쪽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국가검진이라고 해도 증상이 없을 때 가는 병원은 불편하기만 했다. 특히 산부인과는. 아이 둘을 낳았어도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위급한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은 내 몫이고 반박자 느리더라도 불편할 때 찾아야 하는 곳이 병원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가 본 병원이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너무 편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했다. 이번엔 오른쪽 난소에 배란이 됐네요. 자궁내막이 많이 두꺼운 거 보니 그동안에도 생리양이 많아서 고생했겠어요.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빠져나가는 혈액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해요. 피임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출혈을 줄이는 걸 추천해요. 영광의 상처들이 보이네요. 두 아이를 건강히 출산하신 건 대단한 일이에요.
산부인과가 치과보다 편해졌다면 믿을까. 30대 후반이 되어 나이 먹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이런 과정들에 거부감이 줄어든 것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의 불편함을 편안함으로 바꿔주는 사람은 언제나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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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긴장을 풀어주고 집의 편안함을 주기 위해 내 역할을 기꺼이 즐긴다. 하교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짜장 떡볶이 냄새를, 학원과 회사에서 돌아온 가족들을 위해 닭곰탕 냄새를 풍긴다. 거기에 갓 담근 김장김치까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된다면, 나는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나도 내가 좀 더 편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