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24일 새벽 2시!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잔인하고 가슴 아픈 날이다. 그 날 이후 네 명이던 우리 가족은 셋이 되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고, 남은 삶은 그날 전과는 전혀 달랐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가족 중에 누구라도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주검을 보면서도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인줄 알았다. TV 예능에서 가끔 ‘나만 아니면 돼’가 은연중에 나에게도 스며들고 있었나 보다.
천주교 신자였던 남편의 세례명은 요셉이다. 요셉성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으로 성모님과 예수님을 보살피셨다. 직업은 목수였으며 의로운 사람으로 묘사가 된다. 남편은 요셉성인을 닮은 구석이 많았다. 배운적이 없는 데도 생활용품을 잘 만들었다. 아이들 침대와 책장을 만들고, 의자와 액자 그리고 선반까지,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말하면 구입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만들어 준다. 예쁜 가구를 사다가 꾸미고 싶은데 온 집안에 직접 만들어진 가구만 잔뜩 있어서 속도 상하고 짜증도 많이 났었다.
자동차가 고장이 났을때도 거의 정비소에 가지 않았다. 부속품을 사다가 직접 고쳤다. 마당에 자동차를 해체 해놓으면 온 동네 구경거리가 되곤 했다. 모두가 의심스럽게 쳐다 보며, 걱정도 하다 황당해하고 어이없어한다. 모두의 우려를 뒤로하고 닦고 기름칠하고 세차까지 일사천리로 했었다. 당연히 자동차를 원상 복구해 놓았다.
전기에 관련된 모든 것들도 직접 수리를 하고, 페인트칠이나 집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낸다. 만능 해결사요 맥가이버라고 불릴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다. 살면서 필요한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 냈었다. 전원주택에 사는 지인들은 요즈음도 요셉을 들먹거린다. 지금 살아 있어서 시골에 산다면 온 동네 살림꾼으로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고.
얼마 전에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본인이 죽고난 뒤 원하는 나이로 살 수 있다는 설정이었다. 드라마 속에서의 손석구와 김혜자역을 보면서, 마흔여덟 살 우리곁을 떠난 요셉의 멈추어진 40대를 떠올려 본다.
하늘나라에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40대 얼굴일지 더 젊은 20대가 되어 있을지 아니면? 지금의 나처럼 친근하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을지..., 요셉은 살아가면서 먼저 화를 낸적도 거의 없었다. 간혹 다툼이 생겼을때도 얼굴색이 변하는 그를 보면서 내가 사과를 하면 금새 미소 띈 얼굴로 풀어지곤 했었다. 몇번의 이사로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도 우리곁에 남아있는 책장등을 보면서 젊은날의 요셉을 만나 본다. 사진틀 속의 요셉은 지금도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우리와 눈맞춤하면서 반겨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