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여행
친구들과 속초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어디든 떠나는 일은 늘 설렌다. 양평에서 차 한 대로 가기로 했기에 일찍 출발해야 했지만, 몸살기가 가시지 않아 예상시간보다 늦은 8시에야 출발했다. 출근 시간대와 겹쳐 정체가 심할 것 같았다. 예상대로 차는 밀렸고, 3시간 만에야 양평에 도착했다. 다행히 신부님의 5시간짜리 강의 3편을 듣고 와 지루하지 않았고, 길게 늘어선 차들과 밀리는 도로도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은 정해진 날짜에 보는 친구들이지만 언제 봐도 반갑다. 이번에는 부부동반으로 오랜만에 뭉쳤다. 무늬만 나이가 들었지 내뱉는 말이나 행동은 여전하다. "천천히 달려라'' 졸리는 것은 아니냐?'' "졸리니까 차선 밟는 것 아니냐." 여인네들의 바가지는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한창때인가 착각이 든다. 운전해 줘서 편안하게 가면서도 잔소리 한가득이다. 그럼에도 '허허' 웃고 마는 천사 남편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따로 날짜를 받지 않아도 언제든지 한 사람만 '가자'하면 무조건 떠났다. 모두 성당을 다니다 보니 토요일 특전미사(주일에 볼일이 있는 신자들을 위해 토요일 저녁시간에 드리는 주일 미사)를 드린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각자 가족들과 함께 출발을 하곤 했었다. 목적지는 대충 정해놓고 그 이후에는 앞차를 따라가며 머물 곳을 정하는 식이었다. 그땐 핸드폰도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었다. 한 번은 남편이 늦게 집에 귀가해 우리 가족만 따로 출발을 했었다. 시간이 이미 늦었고 정확한 장소도 모르는 터라 속으로는 '그냥 가지 말자고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쨌든 출발을 했다. 하지만 목적지를 모른 채 어둠 속을 달리려니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를 기다리느라,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칠흑 같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환하게 라이트를 켜고 기다리고 있는 일행을 만났다. 이럴 때 필요한 '구세주를 를 만났다'는 표현이 있었나 보다 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더군다나 그쪽 길로 올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기약 없이 마냥 시골 길목을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이나, 앞서간 그 사람들을 믿고 무조건 달려온 우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참 대단했던 것 같다. 그 시절 함께 떠났던 아이들은 이제 결혼해서 또 다른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우린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하며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여행 스타일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한 곳이라도 더 보기 위해 여러 곳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이번에는 한 시간을 다니면 숙소로 돌아와서 세네 시간도 넘게 누워서 잠을 잤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이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쿨쿨 잠이 들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한 말처럼 느껴졌다. 잠이든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서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애틋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속초에서의 3일째, 마지막 날이 밝았다. 이틀 동안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푹 쉬었던 우리는 새벽 5시가 되자 자연스럽게 모두 기상을 했다. 집에서 5시에 일어나려면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 뭉그적거리다 일어나곤 했는데, 오늘은 충분한 휴식 덕분인지 쉽게 일어났고 피곤한 기색도 없이 몸도 한결 가벼웠다. 이번 여행에서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단연 창밖 풍경 덕분이었다. 거실에 앉아 속초 앞바다에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그 순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백사장에 밀려오는 하얀 파도소리까지 들리는 듯, 다정하게 거니는 연인들까지, 한눈에 담다 보니 마음이 절로 느긋해지고 게으름을 피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밥 먹고 잠깐 주위를 산책하고 또다시 숙소로 돌아오게 되는 기적을 매번 경험했다.
30년 넘게 함께해 온 친구들과의 인연이 다시 한번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졌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을까. 되짚어보게 되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속초여행을 마무리했다. 마음 가득 감사함을 채우고 행복을 차곡차곡 쌓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친구들아~, 우리 또 여행 가자. 이번엔 남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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