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와의 여행
"제주도는 밤부터 다시 정체전선이 다가와 비가 내리겠습니다."
"내일 화요일에는 충청과 남부 지방까지 비구름이 북상해
모레 수요일에는 전국 곳곳에 비가 내리겠습니다."
일기예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꽤 오랫만인 것 같다.
비온다는 예보는 없었지만 자다가 깰때마다 창밖을 보게 된다.
어린 손녀와 함께 여행 온 덕분인지 자꾸 신경이 쓰인다.
내가 어렸을 적 살던 고향은 바닥이 온통 황토였다. 그래서 동네에는 오래전 부터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 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그시절에는 비포장 도로가 대부분이었다. 조금만 비가 내려도 길 전체가 푹푹 빠져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장화 없이 못산다는 말은 속담일뿐 그시절에는 실제로 장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나도 역시 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라 비가 오면 고무신은 이름만 신발 일뿐 이름값을 못하고 손에 들려 있기 일쑤였다. 라디오로 일기예보를 들었지만 정확도는 조금 낮았다. 엄마의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하거나, 구름이 어느 한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 간다거나, 개미들이 분주히 움직인다거나 할 때면 '비가 오겠구나'를 짐작 했었다. 나름 스스로 비가 올 것이라 예감 하며 다음날을 기다리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비가 오면 푹푹 빠지는 황톳길을 걸어 오리가 넘는 길을 제대로 된 우산도 없이 홀딱 젖어서 학교를 가는 일이 마냥 즐겁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오기전에는 태풍이 가까이 지나 가며 영향을 미치면 비가 많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다음날은 태풍은 비켜가고 비만 올거라는 예보가 있기도 했다. 그 때문에 계속 갈팡질팡하며 여행을 취소할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어른들끼리라면 쉽게 결정 했을텐데 그 중심에 손녀가 있어 쉽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결국 비가 오더라도 출발 하자는 결정은 역시 손녀가 내렸다. 여행을 준비 하면서 딸은 손녀에게 비행기 타고 가자는 약속을 했다고 했다. 손녀와의 비행기 타자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조건 출발 하기로 했다.
여행 내내 하늘은 파란 도화지에 예쁜 뭉게구름을 그려주었다. 붉은 저녁 노을은 온 제주를 감싸 안은듯 넓게 펼쳐지며 붉게 물들여 명화 같은 풍경을 선사했다.
또다시 비소식이 들린다. 비가 오면 어떠리. 여유있게 파전이라도 해 먹으며 숙소에서 느긋하게 뒹굴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일기예보를 뒤적 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