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일상, 나만의 답
‘섹스 섹스 섹스’
오늘도 시작이다. 2025년, 서울 어딘가에 모여 있는 중2 남자아이들의 유행어다. 중1 남자아이들의 유행어는 ‘게이 게이’. 선생인 나한테 ‘개 썅 마이웨이네’라며, 책을 찢는 아이도 있다. 다들 학업 스트레스가 심한가.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 그러는 게 재미있다는 듯이 한 번 더 해보라며 부추긴다. 핸드폰으로 녹음해서 전송하기도 한다. 중 1 여자아이들의 유행어는 ‘걸레.’ 나는 애들이 이럴 때마다 좀 섬뜩하다. 쟤들은 저기 담긴 함의를 알고 저러는 걸까?
어지럽다. 그냥 이 교실 밖을 나가고 싶다. 답을 모르겠으니까. 사랑해 주면 되나? (어떻게?) 그냥 방관하면 되나? 한때일 뿐이니까? (피해자가 울어도?) 학원에 온 목적만 달성해 주면 되나? 성적만 올려주면 되는 건가? 내가 겨우 하는 건, 잘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하루하루는 쌓여가는데, 정답을 모르겠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나를 바꾸기에도 한계가 느껴지고, 저 학생들을 바꿀 수도 없다. 입시제도를 부추기는 사교육에 있는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웃음거리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의 영향이라도 줄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거대한 시스템에 갇혀 있는 개미가 된 기분. 모두 오늘 하루의 무력감을 어떻게 회복하는 걸까? 모두 정말 대단하다.
“당신은 아이들의 영어 인생을 망치고 있어요.”
당신이 얘네 영어 인생의 시작이자 끝인데, 이게 최선인가요? 고용주의 말이다. 이 직업도 참 무겁구나. 죄책감을 주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 개인적인 일인지, 사회적인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말을 자주 듣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그때마다 익숙해지지 않아서 가슴이 쿵.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데, 죽으라고 던진 돌을 뭐 어떻게 피하겠어요. 맞는 수밖에. 그래도 숨이 붙어 있어 오늘도 뻐끔거리고 있다.
안다. 선한 의도였을 거다. 오늘의 내가 죽고, 당신의 말로 내가 개과천선해서, 나와 사회와 고객을 위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발전하라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우리 다 좋은 의도로 뭔가 할 텐데, 우리는 왜 서로 상처를 받고 있을까? 그런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누군가 그러더라. “그 사람이 좋은 의도로 했다고 확신하지 마세요.” 그러면 나는 어떤 새로운 색안경을 써야 하는 걸까? 매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지 모르겠다. ‘저 사람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넘어갈 수 있는 강인함이 나에게 있는지 궁금하다. 무던하다는 건, 단순히 섬세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무의미한 불안을 이겨내는 강인함일까?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건 오히려 어렵지 않다. 사회적으로 많이 학습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게 나는 어렵다. 어떤 생각이 옳은 건지, 어떤 마음이 정상인 건지. 답이 중요한 게 아닌데 답을 찾고 싶다. 아이들도 나도 답을 찾아 헤맨다. 이러한 고민의 시간이 하루하루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