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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Jul 18. 2022

실패 변주곡-9

그 남자와 세 번째 만남 이후, 난 어디로 가야 할까.

해가 막 지고 있을 무렵,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마루에서 엄마가 원두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뜨거운 물에 황갈색 액체가 녹아들며 풍겨 나오는 향기가 나를 아직 그 찻집에서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내가 진짜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들은 진정 추구할 만한 의미가 있는 가치들이었을까.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들을 나의 판단 없이 내면화해 그 잣대로 나 자신을 판단하고 벌주고 있던 것은 아닐까. 뭐 때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진정 사랑했던 것은 저 가치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내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저 가치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스스로를 무대에 올렸다. 

주변 사람들을 관객으로 만들었다. 

공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나를 보아주는 관객들과 볼거리가 될 수 있는 소품들, 나를 빛나게 해 줄 장신구들. 

그중 하나만 잘못되어도 내 삶은 파괴되는 듯이 느껴졌다.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 가치들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뭐부터 해야 하지?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연극을 포기하기엔 나에겐 인정과 사랑이 너무 귀했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그 인정과 사랑은 이젠 어디서 구해야 하는 거지?


현관 베란다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햇빛이 비쳐 부드러운 분홍빛으로 빛나는 흰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바람도 살랑살랑 내 머리카락을 흩날린다.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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