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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May 24. 2024

학폭가해자에게, 그리고 내 어린시절에게

언젠가 직접 만나서 언어로 전할 수 있도록

 00아 안녕? 잘 지내니? 너는 잘 지낼거야. 너 블로그 봤는데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잘 지내는 것 같더라. 뜬금없지? 십년 넘게 연락이 끊겨서 이젠 아는 사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사람이 갑자기 연락을 하다니. 근데 나한테는 이 세월이 뜬금없지는 않아. 살다가 문득문득 네가 떠오를 때가 있었거든. 


 하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너 나 처음 전학왔을 때 나 따돌린거 기억해? 너한테는 별로 큰일이 아니어서 기억 못할 수도 있겠다.


  내가 얘기해줄게. 너 그때 나한테 더럽다고 그랬었어. 체육시간에 서로 손을 맞잡아야 하는 활동이었는데 더럽다고 내 손 안잡았잖아. 선생님이 사과하라고 했더니 알 수도 없는 편지지에 욕같은 문자로 잔뜩 적어서 나한테 줬던건 기억하니? 그 때 뿐만이 아니라 계속 그런 식으로 교실 분위기를 몰아가고 아이들 사이에서 나를 고립시켰던 건 기억하니? 다분히 의도된 인기투표를 진행해서 너가 아이들 사이에서 우위이고, 나는 고립된 위치라는 걸 항상 인지시켜주는 게 좋았니? 그런 우위를 이용해서 최소 몇년 간 한 사람을 고립시키는게 재밌었어? 금요일마다 각 반에서 한 사람이 음식 싸오는 거 있었잖아. 그 때 우리 엄마가 한 음식은 왜 욕했니? 맛없고 볼품없다면서. 내 물건은 왜 훔쳤니? 애들 신발은 왜 숨기고?

 네 덕분에 많이 울었어. 그랬어? 재미있었니? 


 지금 너는 잘 지낼거야. 평범한 일상을 누리면서 살고있겠지. 별일 없이, 가끔은 사소한 별일들과. 


 나는 어땠을까? 살았을까? 나도 평범했어.

 평범하게 일상들을 지내고 어떤 날은 슬프고 어떤 날은 기쁘면서 살았어. 근데 절대 잊혀지진 않더라. 평생 내가 더럽고 못생긴줄 알았어. 그래서 다른 사람 집에 가면 강박적으로 손을 씻고 깨끗하게 보이도록 노력했어. 소맥 말때 젓가락 뒤쪽으로 마는 습관을 약간 지저분하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말을 잊지 못하는 것도 덕분이야. 관계를 맺는 것도 쉽지 않더라. 어쩔 없이 맺어야 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손이 덜덜 떨릴만큼 용기를 내야 하는 현실이야. 아직도 가끔 꿈에는 네가 나와. 매체에서 학교 폭력에 관한 여러 소식들을 들을 때면 눈물이 멈추질 않아.


 아, 너가 짓, 학폭인건 알지?

 너무 탓만 하는 같아서 억울하니? 학창시절과 흉터처럼 남아버린 트라우마가 억울해. 


 너는 앞으로도 잘 살겠지. 평범하게, 어떤 날은 슬프고, 어떤 날은 기쁘고 하면서. 주변 사람들한테도 너는 좋은 사람일거야. 착한 딸, 언니, 연인이겠지. 근데 너는 나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었다는 말해주고 싶어서. 나한테 뿐만 아니라 세상이 봐도 때의 학폭 가해자였단 잊지 말라고. 그리고 이미 지나왔기 때문에, 니가 앞으로 아무리 인생을 잘, 멋지게 살아간다고 해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단 알려주려고 연락했어. 


 앞으로도 그때 그 시절은 내가 잘 기억하고 있을게. 사과는 하지마. 용서할 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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