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믿고 거름^^"
저에요 네, 걸러지는 회피형이 바로 접니다.
그치만... 나도 회피형이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닌걸? 이어지는 이야기는 왜 회피형은 항상 회피하는지에 관한, 회피형의 구차한 변명이다.
화요일 아침 9시 상담실에 들어섰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요? 하시길래 말문이 막혔다. 사실 도대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가슴속의 불덩이처럼 느껴지는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날 현재의 삶에서 계속 뛰쳐나가게 만드는 것도 이 불덩이이고 나를 파괴하는 것도 이 가슴속의 불덩이인데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연애 얘기를 했다. 어쩌다가 하게 되었더라, 하여튼 간에 최근에 헤어진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헤어진 지 3개월 되었고 5개월 사귀었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불안함을 처음 온전히 내보인 사람이었다. 걔가 옆에 있으면 잠도 잘 자고 훨씬 덜 불안했었다. 나는 항상 불안한 사람이었는데... 의지할 줄 모르는 내가 어쩌면 유일하게 온전히 내 약점을 보여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애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애정을 주지 못하는 나의 태도에 지쳐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애에 올인하지 못한다. 감정이 커지면 일부러 거리를 둔다. 왜냐면 헤어지면 힘들 테니까. 마음이 커지면 그때부터 이별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감정이 커지면 ‘큰일 났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 감정을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한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스스로에게서 감정을 분리해버리는 것 같다고 하셨다. 부정적인 감정은 익숙하므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면 빠르게 처리하는데 좋아한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내게 익숙하지 않으니 어쩔 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양상은 아마 아주 어릴 때부터 고착화된 성격일 것이라고 고치기 쉽지 않을 거라고 한다.
항상 인생도 한발 걸쳐둔 채로 발 뺄 기회만 노린 채 살아왔다. 대학 동아리도 사람들이 나를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너무 친해져 버려서 떠날 생각을 했었다.
이런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혼자 여행을 떠나고, 어디든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진실은 나는 항상 어디엔가 집착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집착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감정이 감당이 되지 않으므로 거리를 두는 것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 자체도 삶을 회피하는 회피 방어기제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착, 하라고 하면 나는 정말 잘 해낼 자신 있다.
실제 감정을 숨길 줄 몰랐던 어린 시절에는 참 많은 곳에 집착했었다. 초등학생 때는 애착 인형에 집착했었다. 항상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했다. 이 집착이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계속되었다. 단짝 친구한테도 집착했었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와 놀면 불안하고 질투가 났다.
연애할 때도 집착할까 봐 그 감정을 차단해버렸었다. 너보다 내가 더 많이 좋아하게 될까 봐 그래서 내가 지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힘들까 봐. 이기적 이게도.
나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너무나 방어적으로, 나의 여린 면들이 들킬까 봐 차가운 이미지로 나를 포장하고 있으니 내 속마음이 커져 외부의 껍데기를 녹일 때마다 속마음을 들킬까 봐 불안이 올라오는 거라고 한다. 속마음의 불을 꺼야 하니 감정이 커지게 만드는 대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내 우울과 무기력의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본 마음대로 살지 못하니 자꾸만 무기력하고 죽고 싶고, 본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려 하니 거기에 에너지를 다 쏟아서 또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들에서 나의 행동 양식들이 끼워 맞춰지기 시작하니 나의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라서 머리가 띵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친구들을 나누고(공/사), 상처받을까 봐 절대 내 마음을 보여주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이 더 편하고 (곧 헤어질 거 나를 숨길 필요가 없으니), 또 그 사람이랑 친해져 ‘버려서’ 그 사람과 '공적'이라고 설정한 친구와 함께 만나게 되면 '공적'인 친구가 모르는 나의 여린 면들이 들킬까 봐 불안했던 것이었구나. 이 얼마나 불편한 삶인가..
여기에서 벗어나 나의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고 내 마음대로 하게 되면, 양분된 속과 겉이 통합된다면 더 창조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내 성격의 양분화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양가성의 한 측면이지 않을까 싶다. 융 학파 심리학자들이 정신의 양가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자신의 양가적 감정에 대해서 통합을 성취하는 것이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는 방법이라고 한다. 내가 억압하는 측면을 내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해체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감정적으로 약한 모습들이 싫다. 그걸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것도 아직은 싫은데.
싫은데요. 사실 회피형들은 자신이 상처받을까 봐 지레 겁먹고 삶을 미리 냉동 창고에 처박는 겁쟁이들이다. 상담 시간의 끝자락에 앞서 말했던, 가슴속에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불덩이가 있어 이게 자꾸 현실을 도피하게 하고 나를 계속해서 파괴하는데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아마도 내가 억압한 사랑일 거라고 한다. 정말일까. 아직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