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모든 실패한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비를 다 맞고 서있었다.
비 맞는 것을 좋아했다. 차가운 빗방울이 몸을 때리며 나를 깨우는 감각.
비가 오면 거리에 사람들이 줄어들고, 빗방울 소리가 세상과 나 사이를 가려 나는 무엇이든 해도 좋을 것만 같은 자유를 느꼈었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싫다.
아무런 보호막 없이 세상에 방치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비가 싫다.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각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다.
너는 실패자야, 빗방울이 말했다.
가치 없는 놈, 아무것도 못하는 밥버러지 새끼. 방안에 처박혀 죽으라지
환경 탓을 하기엔 같은 처지의 사람들도 잘만 해내던데, 풋, 네 노력이 부족한 거지. 아니면 네가 원래 좀 부족한 인간일 수도 있겠네.
항변하고 싶다. 외치고 싶다. 억울하다고
온몸이 무언가로 가득 차올랐다. 내 몸 밖으로 내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터질 것만 같아서, 도망친다.
기를 쓰고 달린다. 시야가 흐려지고 가로등 불빛이 이지러진다.
이제 내가 사람인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그저 터져 나갈 것만 같은 감정만이 비 오는 진창에 널브러졌다.
흙투성이가 된 채 처박힌 나. 구겨져 찢긴 날짜 지난 신문지 같은 나.
그렇다. 또 실패했다. 그리고 그건 모두 내 책임이다.
이대로 사라지고 싶어,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으면 좋겠어.
증발해 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