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는 억울하다

내 이름은 내가 정할거야

by Ou


한바탕 찬바람, 비가 지나갔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도 이제는 땅바닥에 만개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옷장을 정리하기 바쁘다.


꽃샘추위라는 것이 있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되어 꽃들이 피는 그 예쁜 모습에 샘이 나서 지나간 찬바람이 돌아와 심술을 부린단다.

귀엽고 유치한 상상이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렇게 떠올린 것이다.




'겨울이 지난 지도 꽤 되었는데 갑자기 왜이리 쌀쌀해진거야?'


하고 생각하다가,


'추위가 다시 돌아왔네 ... 자기는 봄꽃같은 사랑을 받아보질 못해서 화가 난 게로구나!'


하고...


문득 찬바람의 입장에서 상상해 보았다.


'심술난건 너희들이지!'


'나는 그냥 예쁜 꽃들에게 인사하러 찾아온 건데

나를 싫어하는 건 너희들 이잖아.'


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까?




말하자면, 꽃샘추의는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탄생한, 지극히 섣부른 명칭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더 좋아하고 무언가는 덜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같은 반 친구여도 보다 더 소중할 수 있고,


같은 자식이어도 둘째첫째보다 더 이쁠 수도.


같은 부모여도 아빠보단 엄마가 더 좋을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만, 그 사실은 인정하려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모든 겉 똑같이 사랑하는 것 같이 살려 한다.

모든 걸 평등하게 대하는 사람 같이 보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러지 않은데.


그랬다면,


꽃샘추위 가 아니라 봄맞이바람 이라 불러줬을 텐데.


그렇게 남을 부르니까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바람의 진짜 이름이 무엇일지는 바람만이 알고 있을 텐데.


우리는 물어본 적이 없다.



'나는 겨울보다 봄이 좋아.'
'찬바람은 싫어, 지금 바람 불 때가 아닌데 왜 이런거야?'
'나 사실은 너가 별로 마음에 안들어.'
'너는 사실 그정도까지 소중하지는 않아.'
'너는 별로 싫어, 나는 쟤가 더 좋아.'




같은 말을 쉬이 하지 못하니까,

저런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