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을 자주 갔었다. 언제든 맘먹으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거리와 부담 없는 항공권 가격.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땐 휴가를 딱 하루만 받아서 2박 3일 여행을 하곤 했다. 이렇듯 일본 여행은 나에게 흔한 것이었으나, 오사카는 내가 기피하는 도시였다. 이유는 한국과 가장 비슷해서다. 오사카에서는 일본 특유의 귀여움과 정숙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사카 여행의 중심지인 난바는 부산 남포동과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하다. 온통 시끌벅적하다. 껄렁껄렁한 젊은이들, 팔자걸음을 걷는 거 같기도 하고. 내가 일본에 기대하는 것들이 오사카에는 없다. 아기자기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은 일본은 갈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 오사카는얼떨결에 가게 됐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급하게 결성됐다.
"야, 일본 가자. 3주 뒤에 출발하는 티켓 지금 엄청싸다. 피치항공이라고 일본 저가항공사가 있거든. 간사이 공항으로 16만 원이면 가겠다. 연차 1.5일만 쓰면 돼."
"그럴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
"아니다. 술 깨면 백 프로 우리 못 간다. 지금 생각 들었을 때 각자 티켓팅한다. 고고"
"에라이 모르겠다. 난 방금 샀다. 따라올 사람은 결제해라."
그렇게 두 번째 오사카 여행이 결성되었다.분위기에 휩쓸려 6명이 우발적인 여행에 가담했다. 박물관도 가고, 쇼핑몰도 가고, 오락실도 가고. 아무리 오사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회사에 안 가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3일이 후딱 지나갔다. 마지막 밤은 오사카의 심장인 난바에서 보내기로 했다.
난바는 인파로 가득하다. 천하의 부엌이라는 별명답게 맛있는 가게들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타코야키 하나 사는데 30분을 줄 선다. 6인 모임인 우리는 맛집은 언감생심, 맘 놓고 앉을 수만 있으면 다행이었다. 우리를 받아줄만한 규모의 술집이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일본 여행을 주도했던 친구는 무슨 걱정이냐며 호기롭게 말했다.
"도톤보리 중심에 있는 다리에 가면 삐끼 엄청 많아. 마지못해 걔들 손에 끌려서 식당에 가면 돼."
술집 삐끼? 뭘 믿고 걔들을 따라가나. 그래도 이 친구가 예전에 일본 여자와 교제하면서 일본에 상당히 많이 방문했다. 그러니 말을 들어야지. 삐끼에게 의지해야 하는 처지라니, 역시 오사카는 나와 감성이 다르다. 그래도 여러 명이서 왔으니 돈을 뜯길 걱정은 없겠지.
도톤보리 중심부에서 우리는 일부러 어설프게 두리번거렸다. 기념 사진을 찍는 수많은 타인들 속에서, 우리는 초점 잃은 눈빛을 유지했다. 삐끼의 레이더에 걸리도록! 아니나 다를까, 1분도 안 돼서 일본인 한 명이 우리에게 접근했다. 삐끼였다. 우리는 잠깐 망설이는 척하다가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간다. 북적이는 난바에서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니 인적이 드물어진다. 3분쯤 걸었나. 밥집인 듯 술집인 듯 인테리어가 백반집 같은 술집에 도착했다. 보통 오사카 하면 떠오르는 인스타 맛집들은 사람들이 길게 줄 서고, 인테리어도 일본느낌이 물씬 나던데. 여긴 메뉴판 빼고는 한국인지 중국인지 모르겠다. 만국공통의 평범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테이블은 많은데 손님은 별로 없다. 우리를 가게로 넘긴 삐끼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으므로 유유히 떠났다.
종업원은 우리에게 기본찬인 완두콩과 두부조림을 준비해 주었다. 우리는꼬치구이와 맥주를 주문하고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쯤 있었나. 계산을 하려는데 값이 터무니없게 비싼 거다.
"뭐야. 여기 왜 이렇게 비싸? 영수증 보자"
"이거 뭐야? 우리가 주문 안 한 게 있는데?"
お通し(오토오시). 처음에 받은 기본찬 가격이었다. 인당 500엔이 추가돼서 예상한 가격보다 3천 엔이 더 나왔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우리가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지들 맘대로 줘놓고 돈을 받네? 허허허. 이런 바가지가 다 있다니. 삐끼 손에 끌려오면 내는 추가금인가? 역시 삐끼를 따라오는 게 아니었어. 일심동체로 투덜댔고, 삐끼를 이용하자고 했던 친구는 머쓱해했다. '어쩐지 손님이 없더라. 가게도 허름하고, 종업원도 좀 별로잖아. 그때 알아봤어야 했어'라고 친구들은 돌아가며 한마디씩 보탰다.
우리가 바가지를 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2~3년이 지나서야 お通し가 일본 술집 특유의 문화라는 걸 우연히 접했다. 오사카 삐끼 술집이 바가지를 씌운 게 아니라, 원래 자릿세를 술집들이 받는 곳이 일본이었다. 다만 모든 집이 이걸 받는 건 아니라고 한다. 보통 손님이 앉자마자 기본적인 찬 몇 개를 주는 가게는 자릿세가 포함되어 있다. 바가지를 쓴 것도 아닌데 괜히 오사카 삐끼분과 그 식당을 원망했네.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여행에서 즐거운가 보다. 그 나라 문화를 모른 채로 '날 인종차별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눈탱이 치는 거야?', '이게 바로 혐한?'이라고 의심을 한다 치자. 절약은 할지언정, 마음은 불편할 것이다. 적당한 추가요금은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편하다.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깐. 그게 진짜 바가지라도 뭐 어쩔 거야. 바가지 쓰는 게 너무 싫다면 문화를 잘 알아 가는 것도 방법일 수는 있겠다.
오사카 삐끼 술집에서 우리 6명 일행이 모두 똥 씹은 표정으로 종업원을 바라본 기억이 얼핏 난다. 종업원들은 얼마나 황당했으려나. 바가지로 오해해서 미안해!
-일본에서도 '바가지'(ぼったくり)가 물을 퍼는 도구 외에도, 필요 이상 값을 요구하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