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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May 06. 2024

수험생의 반찬

※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검정고시를 일주일 앞두고,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어머님들, 시험날 선생님들이 도시락을 준비해서 점심시간에 전해드릴 건데요. 혹시 드시고 싶은 메뉴가 있으세요?"

 "우리는 아무거나 주면 잘 먹지~ 그런데 그 따끈한 국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밥이 잘 안 넘어가도, 국물이랑 후루룩 먹으면 편하잖아요."

 "알겠습니다. 국이랑 같이 나오는 도시락으로 준비해 볼게요."




  검정고시 고사장에 가면 여러 기관들에서 응원을 나온다. 예전에는 검정고시를 수업하는 학원, 그리고 야학이 주를 이루었다. 이때는 점심시간이 되면 시험장이 장터로 바뀌곤 했다. 야학에서 커다란 보온통에 국을 끓여 와서, 학교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장터국밥을 먹었다. 이때만 해도 고사장에는 만학도가 많고, 어린 학생들은 소수였다. 우리 나이 지긋한 야학 학생들은 주위에 있는 어린 친구들이 신기했나 보다.


 "선생님, 저기 저 친구들은 저렇게 어린데 왜 학교를 안 갔담? 불량 청소년 그런 건가? 엄마 속이 에지간히 썩겠어."


 우리 학생들이 한 그 말을 근처에 있던 청소년이 들었나 보다. 순간 깜짝 놀란 그 청소년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민망해진 나는 '요즘은 개인의 선택으로 검정고시를 치른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보다 더 똑똑한 학생일지도 모른다.'라고 굳이 해명하기도 했다.


 요즘 검정고시 고사장에 가보면,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기관이 다수다. 청소년 상담센터들에서 검정고시 고사장에 나와서 응원을 한다. 고사장 문을 닫기 10분 전, 오토바이가 섰다. 거기서 18살쯤 돼 보이는 앳된 애가 내린다. 센터에서 나온 직원은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우리 XX, 잘 왔다. 시험 잘 치고! 오토바이는 저쪽에 주차하면 된대.'라고 응원한다. 고사장에서 몇 시간 있다 보면 야학 선생님들과 센터 봉사자들은 무언의 친밀감이 생긴다. 청소년들을 위해 준비한 도시락이 남으면, 야학 선생님들에게 넌지시 건네주기도 한다.




 검정고시 날, 학생들의 점심시간을 기다리던 나는 배달의 민족 앱을 켰다. 국물이 있는 메뉴를 골라서 주문했다. 사진을 보니 먹음직스럽다. 바싹 불고기제육 한상. 밥에다가 불고기 제육, 기본반찬 몇 개, 그리고 마알간 김칫국. 한국인이면 이 중에 맘에 드는 반찬 하나쯤은 있겠지. 이 정도면 호불호 없이 딱 좋겠다.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점심을 먹는 것도 고려했으나, 불편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도시락을 건네드리고, 선생님들은 외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한다.


두둑한 도시락 봉지

 이날의 도시락 반찬의 진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졸업하시는 학생들에게 합격수기를 부탁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2024년 검정고시 합격자의 (미역국 만큼이나) 따끈한 졸업수기 中


 도시락에는 미역국이... 있었다. 나는 메뉴 이미지만 보고 김칫국이 들어있겠거니 했는데, 본도시락의 반찬들은 그때그때 달라지나 보다. 수험생에게 적합하지 않은 미역국이 떡하니 등장.


 "어머님들, 미역국은 제가 일부러 주문한 게 아니에요. 김칫국인 줄 알고 주문했는데, 왜 미역국이 갔을까요. 그래서 국은 드셨어요?"

 "미역국 맛있던데. 싹싹 긁어먹었지~ 그런데 우리끼리 도시락 보고 배꼽 잡고 웃었어요. 미역국이 들어있어서, 오후시간 시험 볼 때도 미역국이 생각나서 계속 웃음이 나오더라니깐."


 다행히 미역국을 드신 분들이 모두 합격을 했다. 징크스도 이겨내는 강한 학생들이다. 야학의 추억은 별 게 없다. 우리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소소한 기억이 생기는 것. 이날 미역국을 드신 우리 학생들은 모두 졸업하지만, 앞으로도 그녀들은 미역국을 보면 웃음을 지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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