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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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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ul 21. 2024

장마철, 수지맞은 물벼락

※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여느 날처럼 야학을 가려던 참이었다. 휴대전화 뜬 부재중 전화 확인했다. 학생의 전화였다. 이상했다. 여간해서는 학생이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데 말이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카카오톡을 켰다. 벼락같은 소식이 와있었다. 야학에 물난리가 나서 오늘 수업은 휴강이라고 한다. 먼저 야학에 도착한 학생과 선생님들은 가전제품을 책상 위로 이동시키고, 첨벙거리는 물을 퍼내고 있었다.



 장마철이 되면 우리는 물이 샐까 봐 걱정한다. 지하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평소에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 때문에 제습기 사용이 필수다. 요즘같이 습한 여름이 되면 제습기는 쉬지 않고 돌아간다. 학교 문을 열지 않는 주말에는 근처에 사는 선생님들이 제습기 물을 비우러 학교에 구태여 방문하기도 한다. 우리 야학이 이 건물에 입주한 지 3년이 되었는데, 이 정도로 위험한 물난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임대인이 물이 나가는 길을 수리해 주겠다고는 했는데, 장마가 끝나야 공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당분간은 비가 많이 오지 않기를 제사라도 지내야 할 판이다.


 우리 야학은 오랜 세월 동안 월세가 저렴한 지하를 전전하고 있다. 그나마 이 건물은 양반이다. 이전 건물은 더 심했다. 시장통 안에 있는 노후건물 지하에 야학이 꽈리를 틀고 있었는데, 벽에 핀 곰팡이를 제거하는 게 연례행사였다. 워낙 낡은 건물이라 그런지, 임대인에게 건물 수리를 요구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문제가 생기면 임차인인 우리의 예산으로 처리하곤 했다. 이사를 하고 싶어서 몇 년 동안 벼르다가, 지금의 건물을 만나서 이동을 감행했다. 이 장소는 음악작업실이 있던 자리라 별다른 공사 없이 야학이 입주하기 딱 좋다. 건물도 그리 낡지 않은지라 이제는 물걱정은 안녕이라고 생각했는데, 물폭탄으로 수업까지 휴강을 하고 나니 예전 건물의 PTSD가 찾아온다.



 여건이 좋으면 야학이라고 할 수 없다. 비영리기관은 수익을 만들 길이 없다. 영리를 추구하면 더 이상 비영리기관이 아니다. 우리는 정부지원금이나 민간 기부금에 기대서 운영할 수밖에 없다. 야학이 독자적으로 돈을 만들어서 꾸려나갈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수익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올해 들어왔던 예산일지라도 내년에는 중단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지원금을 많이 받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특히 정부는 지원금 관리에 엄격하다. 최소 학생수, 출석률, 주당 교육시간 등 정부기관에서 원하는 요건을 충족해줘야 한다. 돈을 받았다고 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진 항목 안에서 기준에 맞게 사용한 뒤에 검증절차를 거친다. 그나마 사기업의 지원은 정부보다는 덜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사기업에서 우리를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해서, 도움을 받는 게 쉽지 않다. 그들에게 후원을 한 보람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런 구조다 보니 야학은 '돈이 많으면, 그만큼 제약도 많은 곳'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돈으로 우리가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운영하는 게 속이 편하다.


 내가 몸담았던 두 개의 야학은 돈 앞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2010년쯤이었을 거다. 그간 야학들이 받던 복지예산이 축소되면서 많은 곳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내가 있던 부산 참사랑야학은 '지원금 없이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꾸려 나가자'라는 길을 택했다. 정부의 지원사업에 선정되려면 당시보다 훨씬 더 많은 학생이 필요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학교의 덩치를 키울 여건도, 에너지도 없었다. 대신 선생님들이 매달 만원씩 내고, 늘 하던 대로 소소하게 우리끼리 재밌게 활동하는 길을 택했다. 돈이 많이 쓰일 법한 활동은 모두 없어졌다. 없어진 활동의 자리는 일일호프로 채워졌다. 간이 술집을 열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야학 지원금을 뜯어냈다. 그에 반해 지금 있는 서울 야학은 생존에 더 초점을 두었다. 교실에 가벽을 세워서 공간을 분리했다. 그렇게 마련한 자리에 초등반과 한글반을 신규 개설했다. 학생이 많을수록, 프로그램이 다양할수록 지원금을 받기에 유리해서다. 새로 생긴 한글반 운영은 쉽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들이 기피하는 반이 되 버렸다. 나일론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학생들이 공부를 해서 상위 학급으로 진학하 선순환이 되어야 하는데, 한글반 학생들은 몇 년이고 한글만 공부하고 싶어 했다. 간혹 상식 밖의 요구를 하는 학생들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마음 같아서는 한글반을 폐강하고 싶었으나, 현실적인 이유들로 그럴 수 없었다. 이렇듯 야학의 운영은 '돈과 자유'이 두 선택지를 오가면서 이뤄진다. 이런 걸 보면 봉사활동은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가 비영리기관을 돈벌이 없이도 생존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기에 살아있는 게다. 만약 내가 아무 걱정 없이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면, 누군가 대가를 대신 치른 결과다.



 퀘퀘한 냄새가 배인 바닥을 닦고 있었다. 선생님 K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다음 주에 가구를 만드는 퍼XX 기업에서 책/걸상 지원을 위해 야학을 답사하기로 되어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어수선한 야학의 모습이 전화위복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야학이 물난리를 당한 모습을 본다면 의가 수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들어있었다. 좋은 취지에 도움을 주는 기업이 참 귀한 법. 언제나 환영이다. 하필 이런 시기와 맞물리니 생각이 많다. 기업이 원하는 스토리텔링을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이게 좋아해야 할 일일까 하는 씁쓸함이 동시에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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