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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un 08. 2024

우리 사이, 무슨 사이?

※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올해 내가 맡은 학급은 유난히 출석률이 좋다. 힘들다, 못하겠다 하셔도 다들 공부를 마치려는 열정이 강하시다. 굳은 각오로 시작한 만큼, 졸업장을 받아야 겠다는 의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눈빛에서 느껴진다. 이럴 때는 힘껏 칭찬을 해드려야 한다. 그랬더니 한 학생께서 뿌듯해하면서 '선생님, 저희 예쁘죠?' 하셨다. 주변에서는 '어머, 칭찬받고 싶어서 애교를 부리네'라면서 거드셨다. 이렇게 한번 다 같이 웃고 수업을 시작한다. 생각해 보니, 이 학생분은 우리 엄마와 동갑이다. 생각해 보니 부모님 또래의 분이 나에게 이런 대사를 하는 게 흔하지 않은 일이다. 야학이 아니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이렇듯 우리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일상언어로 설명하기 힘들다.




 우리 학생들은 보통 수업 시작시간보다 훨씬 일찍 오신다. 다들 나이가 있으셔서인지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다. 어쩌다가 내가 수업시간보다 30분쯤 미리 도착하는 날이면, 일찍부터 와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는 학생들을 발견한다. 차분히 수업내용을 복습하는 학생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런 대화를 나누며 교우를 돈독히 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는 부부동반 모임을 안 좋아해. 꼭 남의 남편들한테 여우짓 하는 년들이 있다니까."

 "어머. 이 나이 먹어서도 그렇게 주책 떠는 것들이 있어?"

 "그렇더라니까~ 저번에는 말이야. (이하 생략)"


 대화가 농익었다. 여기서 배우는 공부는 16금 중학생 수준인데, 실제 그들은 49금... 아니 59금 대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 중이다. 어느 날은 자식 걱정으로 그녀들의 쉬는 시간이 채워졌다. 한 학생이 자식 얘기를 꺼냈다.


 "우리 아들이 아직 장가를 안 갔거든. 나이가 많이 찼는데 이제 늦었나 싶어. 어휴... 결혼을 가려면 걔는 살부터 빼야 돼. 100kg 넘었을 거야 아마. 애가 돼지가 됐어."


 옆 반 학생분이 지나가다가 이 얘기를 듣고는 무의식적으로 혼잣말을 뱉었다.


 "100킬로? 돼지는 120킬로일 때 딱 먹기 좋지."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조용히 내뱉은 혼잣말을 들켜서 민망하셨나 보다. 코를 찡긋 하시면서 날 보고 '그런데 150kg가 되면 맛없어서 못 먹어. 비계가 너무 많아.'라는 말을 남기고는 본인의 반으로 총총 들어가셨다. 속풀이쇼 동치미를 직관한 기분이랄까.




 홍어삼합 마냥 푹 삭힌, 시큼 쿰쿰한 수다를 떨던 그녀들. 문학을 만나면 사춘기 소녀로 돌아간다. 김유정의 '봄봄'을 수업할 때면 '이렇게 이 소설이 재밌었나?' 싶다. 이 소설에는 해학적인 요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까르르 웃음꽃이 핀다. 주인공이 장인의 수염을 잡고 싸우는 장면에서는 학생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웃음이 터졌다. 방청객 리액션이다. 성례를 올리고 싶은 점순이가 주인공 허리를 툭툭 찌르는 장면에서는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 읽고 나서는 '어렸을 적 우리 아버지 생각난다'며 코를 회상에 잠기는 학생도 계신다.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또 어떤가. '어머어머 서로 좋아하네. 좋아해.', '에구 젊은 새댁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꼬. 그래도 애를 생각해야지' 소설을 소리 내어 읽는데, 추임새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맛깔난다. 정신을 차려보니, 각자의 로맨스를 이야기하고 있다. 약간의 상상을 가미해서, '옥희 엄마가 만약에 아저씨의 마음을 받아줬다면 어땠을까?'라는 얘기까지 척척 토론이 시작되었다. 물론 발제자는 내가 아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날 수업은 셔터 내리는 거지. 밖에서는 분명 K-아줌마들인데, 교실 안에서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 감수성을 가진 소녀들로 잠깐 돌아간다.

 

 가족 얘기를 할 때면 교실이 오은영 박사님들로 가득 찬다. 10여 년 전에 엄마가 몸에 있는 용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한 적이 있다. 그 용종을 조직검사해서 암인지 판단을 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설사 용종이 악성이라 하더라도 극초기 단계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나는 그런 엄마 모습이 답답했고, 수업시간에 그런 얘기를 학생들에게 꺼낸 적이 있다. 그러자 학생들은 모두 우리 엄마의 대변인이 되었다.


 "아이고, 여자 마음이 그런 게 아니라. 심각한 병이 아니라도, 이게 막상 내 일이 되면 싱숭생숭하다고. 나도 예전에 암수술을 받은 적이 있거든. 그건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병의 경중을 떠나서 상실감이 온다고. 갱년기에 그런 일을 겪으면 얼마나 마음이 고생할꼬."


 여기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첨언까지  신신당부한다. 그저 엄마를 여왕처럼 대하라는 것. 다정하게 말 걸어주고, 나무라는 소리를 하지 말기. 맛있는 음식 먹으러 찾아다니기. 지금 생각해 보니 본인들이 집에서 받아보고 싶은 대접을 나에게 조언한 것 같다. 내가 간과했던 점들을 엄마의 입장에서 공감해 주는 학생들. 그 덕분에 차마 엄마가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애로점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중적인 관계다. 사제간이면서, 인생 선후배 사이다. 공부는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으나, 삶을 살아온 경험은 그들이 더 많다. 가끔은 가정상담도 곁들여주시니, 우리의 관계를 딱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힘들다. 그래서 백발의 학생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칭하는 게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된다. 적합한 호칭인지.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들인데, 공부하는 순간만큼은 다시 소녀가 된다. 어릴 때 친구를 만나면 철부지가 되는 것처럼, 환갑을 앞둔 아저씨도 엄마 앞에서는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우리 학생들도 이곳에서는 소녀감성이 낭낭해진다. 이런 관계가 희소하고 소중하다 보니 졸업생들은 오랜 시간 서로 우애를 나눈다. 또 하나의 인연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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