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나쁘게 살아볼 기회가 없었을 뿐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순해 보이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이 일컫는 '좋은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학과를 졸업했다. 우스갯소리로 '여자 많은 곳에 있는 남자는 머슴'이라곤 하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과에서는 남학생이 입학하면 숙명처럼 학생회 활동을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2학년 때까지는 불만이 없었다. 선배들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니깐. 문제는 3학년 때였다. 3학년이 되면 후배들을 통솔하고, 책임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의사결정을 해야 했고, 의견 충돌을 감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선, 후배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날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나에 대한 평은 이랬다.
"일은 잘하는데 싹수가 없다"
나쁜 역할을 할 멍석이 깔리니 기가 막히게 그 역할을 잘 해낸 셈이다. 이때 깨달았다. 난 사실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여태껏 나쁘게 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될 기회를 주자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봉사활동 구인 글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평소 야학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선뜻 내 시간과 정성을 쏟을 정도의 성의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 간의 문제를 많이 겪고 나니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내 인성에 대해 문제의식이 강해졌다. 정 반대의 모습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이해심이 많으면서도 내 일은 척척 잘하는 완벽한 인간!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욕이 나를 야학으로 이끌었다. 여러 야학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곳을 골랐다. 사람들과 엮여서 피곤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야학에서의 보람과 배움은 모두 사람을 통해서 왔다.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 학생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았다. 나 자신의 태도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정 반대의 모습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싹수없는 내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정 반대의 모습으로 변화하진 못했지만, 내 다양한 모습을 발견했다. 좌절하는 학생들을 응원한다. 신입교사가 빨리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검정고시 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학부모처럼 교문 앞에서 기도를 한다. 학생들에게 학사모를 씌워드릴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 낮에 힘들게 일하시고 졸린 눈을 비비며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는다. 학교에서 보기 힘든, 사회에서 보기 힘든 내 얼굴들이 야학에서는 보인다.
보통 야학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덕담들을 해주신다. 좋은 일이 맞긴 하다. 나 좋은 일. 앞서 말했듯이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할 만큼 난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잘되려고, 더 잘살아보려고 야학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효과가 꽤 있다. 얼마나 효과가 크면 돈 한 푼 안 되는 이 일을 5년이나 했을까. 여기서 배운 교훈들로 사회에서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내면 된다. 그렇게 더 돈을 많이 벌면 된다.
이 글이 쓴지 10개월이 지났네요. 내용이 다소 모호하고,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글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같은 글감을 가지고 글을 다시 써보았습니다.
https://brunch.co.kr/@1be434e664e7498/84